[황규인의 잡학사전]‘녹조라떼’로 신발을 만든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6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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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발은 뭘로 만들었을까요? 제목을 읽고 들어오셨을 테니 이미 정답을 아실 터.
‘울트라 III 에코’라는 이름이 붙은 이 신발은 녹조(綠藻)로 만들었습니다. 네, ‘녹조라떼’라고 할 때 그 녹조 맞습니다. 정확하게는 중국 타이(太) 호에 잔뜩 끼었던 녹조가 원료입니다.



이 신발을 만든 건 ‘비보베어풋(Vivobarefoot)’이라는 영국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원래 샌들이나 구두창에 쓰는 EVA(Ethylene-vinyl acetate·에틸렌초산비닐)로 ‘울트라 III’라는 워터슈즈를 만들었습니다.

EVA로 만든 울트라 III
EVA로 만든 울트라 III

문제는 석유 같은 화석 연료가 없으면 이 EVA를 만들 수가 없다는 것. 친환경 제품을 만들고 싶었던 비보베어풋은 녹조로 플라스틱 계통 소재를 만드는 미국 블룸(Bloom)사와 손잡았습니다. (녹조가 하천에 가득 낀 모습을 일컫는 영어 표현이 ‘bloom’입니다.) 이 미국 회사는 녹조 성분을 최고 60%까지 포함한 ‘블룸 폼(foam·아래 사진)’이라는 소재를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재는 요가 매트 등을 만드는 데 쓸 수 있다고 합니다.



녹조로 신발을 만드는 첫 단계는 이동 작업 차량을 녹조가 낀 하천으로 끌고 가는 것. 하천에서 녹조를 끌어올린 다음 화학 응고제를 뿌립니다. 그러면 녹조는 덩어리가 진 채로 이 차량에 달린 물탱크 아래 가라 앉죠. 공기를 주입해 덩어리를 물 위로 떠오르게 한 다음 햇볕에 잘 말리면 ‘녹조 수확’ 작업이 끝납니다.



수확이 끝나면 녹조에 있던 독성이 사라진 물을 원래 있던 하천으로 돌려보냅니다. 두 회사는 이 신발 한 켤레를 만들면 물 57갤런(약 216¤)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제품을 만들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두 회사가 홍보하는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에는 녹조를 가지고 비료(퇴비)를 만드는 미라이에(ミライエ)라는 회사도 있습니다. 이 회사 역시 홈페이지(아래 사진)를 통해 녹조(アオコ)를 즉석에서 비료를 만들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녹조는 또 석유를 대체할 바이오 에너지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미국 에너지국(DOE)은 2010년 녹조(algae)를 바이오 연료로 바꾸는 방법을 찾는 연구에 8000만 달러(약 897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전기라고 안 될 게 있나요? 지난해 류원형 연세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녹조에서 전자(電子)를 뽑아내 전기를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연구팀은 이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서녈 머터리얼스(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싣기도 했습니다.

녹조에서 전자를 뽑아내는 데 성공한 류원형 교수(가운데)와 연구진
녹조에서 전자를 뽑아내는 데 성공한 류원형 교수(가운데)와 연구진

그렇다고 환경오염 물질인 녹조 같은 게 얼마든 많이 생겨도 괜찮다고 말씀드리려는 건 물론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녹조를 이용하는 법도 있다는 걸 소개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아무리 싫어도 녹조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면 쓸모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일 테니까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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