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취미… 전공자만 과학 얘기 하란 법 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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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만화 펴낸 디자이너 김명호 씨
‘잿빛 비둘기가 도시를 점령한 까닭’… ‘목욕할 때 쭈글쭈글해진 손가락’ 등
일상적 현상에 관한 궁금증 풀어내

김명호 씨는 “만화 외에도 과학 관련 정보를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김명호 씨는 “만화 외에도 과학 관련 정보를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중년 이상인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할 거다. 29년 전 서울올림픽 개막식 TV 중계 중에 성화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다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여 통구이가 된 비둘기들의 마지막 모습을.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티 없는 백색 비둘기였다.

최근 신간 ‘김명호의 과학뉴스’(사이언스북스)를 펴낸 저자 김명호 씨(40)는 그렇게 우르르 놓여났던 순백색 비둘기들을 이후 서울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까닭이 궁금했다. 책의 첫 장(章) ‘어두운 색 비둘기가 도시를 점령한 까닭’ 말미에 쓴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자연산 일광 차단제인 멜라닌이 풍부한 개체일수록 그렇지 않은 동종 개체에 비해 면역력이 높고, 성(性)적으로 활발하고, 스트레스에 강한 특징을 보인다. 미세중금속과 기생충으로 가득한 도시 환경을 견뎌내기에 더 유리하다 볼 수 있다.”

일상적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관련 과학 정보를 토대로 풀어내는 만화를 인터넷신문 딴지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김 씨의 본업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다. 새 책 출간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취미가 과학 공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10대 때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는 순순히 따라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성적과 무관한 공부를 하고 싶어 과학서적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디자인 일을 시작한 뒤에는 해외 과학저널 사이트에서 흥미롭게 읽은 정보를 만화로 엮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 만화를 통해 학자들과 인연을 맺고 조금씩 더 깊이 들어가다 보니 나름의 창작 영역이 생겼다.”

욕조에 오래 앉아 있으면 손가락 끝이 쭈글쭈글해지는 이유, 물이 끓을 때 꼭지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는 찻주전자의 최적 조건 등 얼핏 알 듯하면서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현상에 대해 풍성한 과학적 정보를 흥미진진하게 제시하는 것이 그가 그리는 만화의 매력이다.

“만화라고 해서 꼭 가볍고 쉽게 읽히도록 엮어야 한다는 건 편견이다.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풀 수도 있구나’ 하는 다양성을 제시하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과학 공부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있었지만 ‘과학 얘기는 대학에서 과학 전공한 사람만 하는 것’이라는 편견도 깨고 싶다. 아 물론, 학교에 다시 간다는 생각이 끔찍하기도 하지만. 하하.”

과학을 취미로 여기던 이 남자는 한 출판사에서 과학 만화를 연재하다 만난 생물학 전공 편집자와 결혼해 “과학 다큐멘터리를 함께 즐겁게 볼 수 있는 배우자를 얻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뤘다. 이 정도면 분명, 취미에 몰두해 성공한 인생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디자이너 김명호#김명호의 과학뉴스#과학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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