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촛불마케팅… 시국 서적 봇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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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없다’ ‘바꾸어라, 정치’ 등… 현 세태 비판한 내용 책 펴내
정치에 쏠린 국민 관심사 부응

  ‘대통령은 없다’, ‘바꾸어라, 정치’,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촛불집회에서 나온 구호가 아니다. 최근 출간된 책 제목이다. 현 시국을 비판하거나 시국과 직접 관련되지 않아도 이를 활용해 제목을 달거나 홍보를 하는 책들이 적지 않다. 출판사들이 ‘분노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것이다.

 21세기북스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다룬 ‘대통령의 조건’(월러 R 뉴웰·2012년)의 내용은 그대로 둔 채 제목만 ‘대통령은 없다’로 바꿔 최근 다시 내놓았다.

 이 책은 링컨, 루스벨트, 닉슨, 케네디, 클린턴 등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공과(功過)를 분석해 대통령이 지녀야 할 덕목을 제시했다. 김수현 21세기북스 편집자는 “대통령이 갖춰야 할 여러 자질을 살펴볼 때 한국에 과연 그런 대통령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담아 새 제목을 정했다”고 말했다.

 스페인에 정치 개혁 바람을 몰고 온 마누엘라 카르메나 마드리드 시장이 쓴 ‘바꾸어라, 정치’(푸른지식)도 나왔다. 원제는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이지만 현 정국을 반영해 이렇게 제목을 달았다. 책 띠지에는 ‘들어라, 시민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라는 문구까지 넣었다. 출판사는 지난달 말부터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책 내용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모두 500여 명이 공감을 표했다.

 연재물을 읽은 독자들은 ‘조속히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광장의 촛불이 흐지부지 흘러버리는 가벼운 정치 이슈처럼 묻히지 말길’ 등의 댓글을 달고 있다.

  ‘정상인간’(김영선)은 현 정부가 주요 모토로 내건 ‘비정상의 정상화’를 비꼰 제목이다. 장시간-저임금 노동이 일상화된 현실을 정상이라고 여기게 만든 사회 구조를 비판했다. 이 책을 출간한 박재영 오월의봄 대표는 “‘정상인간’은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비정상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도 그것이 ‘정상’이라고 외쳤던 현 정부를 풍자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역할도 못 하면서 국가의 명예와 성장만을 앞세운 현실을 질타한 ‘국가 이성 비판’(김덕영·다시봄)도 나왔다. 출판사는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에 답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이게…’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많이 들고 나온 피켓 글귀 가운데 하나다.

 불신과 절망만을 안기는 사회구조를 뜯어고치려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엄기호·창비)는 노력한 만큼 성취할 수 없고 생존을 위해 발버둥쳐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서 필요한 건 ‘리셋’이라고 주장한다.

 출판계에서는 출판사들이 현 시국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콘텐츠로 독자를 공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들의 관심이 정치로 급격히 쏠리면서 책 판매량이 ‘반 토막’ 나자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주제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독자들의 속내를 직설적으로 반영한 책이 각광받고 있다”며 “시대의 변화를 담은 책은 더 많아지고 출간하는 속도도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촛불마케팅#시국 서적#대통령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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