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양약’ 김영한 前 민정수석 업무수첩에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일 2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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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취재진이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고 김영한 씨의 업무 수첩 전문을 입수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이 빼곡히 적힌 이 업무 수첩에는 박대통령을 둘러싼 '세월호 7시간 행적' 의혹에 대해 '침묵이 양약(良藥)'이라고 적힌 내용이 있었다.

비서실장 재직 도중 최순실 씨 관련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최순실 씨의 측근 동향'을 파악한 정황과 박 대통령의 동생 지만 씨를 견제했던 정황도 담겨있다.

세월호 참사 발생 후 2달이 지난 2014년 6월,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고 김영한 전 수석은 취임 세 달 뒤인 9월 10일 업무수첩에 '국경 없는 기자회', '침묵이 양약이라고 적고 그 옆에 '산케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이 단어들은 한자로 쓴 '장(長)'자 옆에 적혀 있었는데, 장(長)은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의미하는 글자다. 따라서 이 단어들은 김 전 실장의 지시를 받아 적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 씨를 만났다고 암시한 일본 산케이 신문의 기사에 '침묵으로 대응하는 게 좋다'고 한 김 비서실장의 발언을 메모 한 것. 당시 '국경없는 기자회' 등은 "언론이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정상"이라고 항의하는 상황이었다.

앞서 2014년 7월 18일 김 전 수석의 업무 수첩에는 '청와대는 숨어야 한다', '특정 직책은 노코멘트' 등의 지시도 적혀 있었다. 또 이 날 업무 수첩에는 '기침 취침 집무', '박 대통령이 경내 계신 곳이 집무 장소', '경호상 알지도 알려고도 않는다'는 문구들도 씌어져 있었다. 이는 세달 뒤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했던 주장과 똑같은 내용. 김 실장은 국회에서 "대통령께서는 아침에 일어나시면 그것이 출근이고 주무시면 퇴근이라고 생각한다"며 야당 등의 '세월호 7시간' 공세를 비껴갔다.

김 전 실장은 지난달 2일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비서실장 당시 최순실 관련 보고를 받은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며, 만난 일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채널A가 입수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에는 김기춘 전 실장이 '최순실 씨의 측근 동향'을 파악한 정황이 드러난다.

2014년 12월 12일 수첩에도 김기춘 실장의 지시를 뜻하는 한자 '장'이 적혀 있고, 그 아래는 최순실 씨와 동거했던 50대 여성 '김모 씨'의 동향을 파악한 기록도 적혀 있다. 김 씨의 이름 옆에는 '꽃뱀', 아래는 '밍크 장사'라고 적어 놓기도 했다. 김 씨는 최순실 씨가 전 남편 정윤회 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낸 2014년 3월을 전후해 수개월 동안 최 씨와 함께 살았던 인물로, 2014년 말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당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김 씨의 이름 왼쪽 옆에는 남성 박모 씨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모 정부 부처에서 정보 업무를 담당한 박 씨는 김 씨를 통해 최순실 씨의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기춘 실장은 최순실·정윤회 부부의 내밀한 사정을 잘 아는 김 씨를 경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에는 김기춘 전 실장이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와 박 씨의 측근들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담겨 있다.

'정윤회 문건' 유출 사실이 언론에 최초로 보도되고 보름 정도가 지난 시점에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받아 적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에 박지만 EG 회장의 이름이 등장한다. 박 회장이 한 지인과 회동했다는 설을 적어 놓는가 하면, 박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육사 37기 동기생 원모 씨의 이름을 적어 놓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정국 교착 상황 속에서도 김기춘 전 실장이 박지만 회장은 물론 측근들의 휴가 일정까지 감시하며 움직임을 예의주시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전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에는 박 회장의 '정신상태'를 언급한 대목도 눈에 띈다. 당시 박 대통령의 친인척 동향을 파악했던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취임초기 '박지만 회장 눈에 들어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얘기하다가 어느 순간 박 회장 감시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전 비서실장이 청와대 내 권력 장악을 위해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는 박지만 회장을 계속 견제했음을 알 수 있다.

황규락기자 rocku@donga.com
배준우 채널A기자 jjoonn@donga.com
이동재 채널A기자 mov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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