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대구 서문시장 화재현장 찾은 날… 구미 박정희 생가에 방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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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방문 현장
상인들 “쓱 왔다가려면 왜 왔나”… 10여분 방문에 싸늘

 “대통령 온다 카는 소리도 못 들었다 아이가. 금방 왔다 가는 건 도리가 아이제. 접때는 손도 잡아주고 캤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큰불로 막대한 피해가 난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1일 전격 방문했다. 서문시장을 찾은 건 지난해 9월 7일 이후 1년 3개월 만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악화된 여론을 감안한 듯 박 대통령은 최소한의 수행원만 데리고 갔다. 기자단도 동행하지 않았다. 대구에서도 서문시장은 박 대통령이 ‘정치적 고향’으로 여기는 곳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이 서문시장을 다녀오면 기(氣)를 받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동안 잠행 모드를 유지한 박 대통령이지만 남다르게 여기던 장소가 화마에 피해를 당한 걸 멀리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과거와는 많이 달랐다. 박 대통령을 연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만 봤다. 거칠게 항의하는 상인도 일부 있었다. 사전에 이런 분위기가 감지됐는지 대통령이 시장에 머문 시간은 10여 분에 그쳤다.

 이날 서문시장 정문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약 80m를 걸어 119안전센터 상황실을 찾았다. 일부 상인이 “힘내세요”라고 말하거나 손을 흔들면 엷은 미소를 보였다. 이어 김영오 상가연합회장 등의 안내를 받아 4지구 화재 현장을 둘러보며 “여기 오는 데 대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힘들 때마다 늘 힘을 주는 상인 여러분이 불의의 화재로 큰 아픔을 겪고 있는데 찾아뵙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생각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정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신속히 하도록 하겠다”며 즉석에서 강석훈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게 “관계 부처가 지원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민안전처는 행정자치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중소기업청 국세청 등 관계 부처 합동 지원협의체를 구성해 범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당초 이날 박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은 성사 여부가 불투명했다. 오전 청와대의 요청을 받은 대구시가 사고 수습 상황과 현장 분위기를 전달하자 취소됐다가 오후에 갑자기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권영진 대구시장과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은 미처 현장에 가지도 못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몇몇 상가연합회 간부들과만 시장을 둘러봤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순수한 마음에 시장을 방문하려는데 괜한 오해를 살까 봐 단체장 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20년간 서문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한 박종규 씨(42)는 “예전엔 가까이 가서 얼굴 한번 보려고 기다렸지만 오늘은 그럴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며 “그냥 쓱 왔다가 사고 수습대책 하나 내놓지 않고 무책임하게 가버린 대통령을 이제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말했다.

 4지구 피해 상인들도 정작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갔다며 크게 반발했다. 4지구 상가연합회의 한 간부는 “지금 이런 상황에 갑자기 온 대통령에게 박수칠 수가 있겠느냐”며 “피해 상인들도 만나지 않고 그냥 가버렸는데 도대체 왜 왔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반면 대통령의 짧은 방문이 상인들에게 위로가 됐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윤성정 씨(59)는 “서문시장은 대통령이 아끼는 정치적 고향이 아니냐. 그런 기억에 화재로 힘들어하는 우리를 챙기려고 온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잠시 머물다 떠난 시장 골목에서는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30여 명과 이에 반대하는 상인들이 말싸움을 벌이며 마찰을 빚기도 했다. 비슷한 시간 서문시장 입구인 동산네거리에서는 대구참여연대 등이 ‘박근혜 하야’를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4지구에서 한복 장사를 하다 화재 피해를 본 김모 씨(60·여)는 “(박사모들이) 초상집에 와서 박수치고 떠드는 꼴”이라면서 “상인들에게 오히려 큰 상처를 줬다”며 눈물을 보였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피해 상인들을 만나 손이라도 잡고 직접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어 했지만 진화 작업과 조사가 이어지는 현장에 계속 있으면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라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현장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보였다고 전했다. 한편 화재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은 1일 4지구 건물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 일부를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대구=장영훈 jang@donga.com / 장택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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