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비아그라와 청와대 예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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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선보인 비아그라는 ‘회춘(回春)의 묘약(妙藥)’으로 남성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 피를 말초신경계까지 원활하게 공급해 고개 숙인 남성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워주는 효능 덕분이다. 심혈관계 부작용 때문에 의사 처방을 받아야 구입할 수 있지만 수요가 많아 짝퉁과 암거래까지 성행할 정도다. 핏속의 산소 공급을 늘려줘 고산 등반가들 사이에서 호흡장애 등을 완화하는 용도로도 쓰인다고 한다.

 ▷청와대가 작년 12월 비아그라 60정과 비아그라 복제품인 팔팔정 304정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연국 대변인은 “5월 아프리카 3개국 순방 때 고산병 치료제로 샀다”며 “한 번도 안 써서 그대로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고산병 전문치료제도 아니고 부작용도 있다는 비아그라를 대량 구입한 게 이상하다는 의사가 적지 않다. 제조사인 화이자제약 측은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를 목적으로만 쓰는 전문의약품”이라고 선을 그었다.

 ▷2013년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불량 부품이 들어간 사실이 드러나 원전 6기가 한꺼번에 가동을 멈춘 적이 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여름에 (양복) 윗도리를 입고 넥타이까지 매는데 전기를 절약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이 안 되는 얘기”라며 “청와대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저도 요즘 에어컨을 전혀 틀지 않고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청와대가 미용과 노화 방지 주사제는 물론이고 비아그라와 국소 마취용 크림, 전신 마취제, 55세 이상 불면증 환자 수면제 등을 사들이는 데는 예산을 아끼지 않았다.

 ▷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유난히 절약을 강조했다. 135조 원에 이르는 박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려면 예산 누수를 막아야 한다며 깨알 같은 ‘공약 가계부’도 만들었다. 만 85세 이상 어르신에게 매달 3만 원씩 드리는 한 지방자치단체의 ‘장수수당’도 없애라고 닦달했다. 박 대통령을 업고 재벌들로부터 수십억, 수백억 원씩 뜯어낸 최순실 씨의 씀씀이는 절약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국정보다 외모에 더 관심을 쏟았던 청와대의 민낯을 더는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비아그라#청와대#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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