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관직을 떠나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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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을 잃었어도 연연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할 것이다
 
失而不戀 民斯敬之矣
실이불련 민사경지의
 
―정약용 ‘목민심서(牧民心書)’

 
‘목민심서’는 조선 후기 정약용이 목민관(牧民官), 즉 수령이 지켜야 할 바른 행동들이 무엇인가를 비판적으로 정리한 저술이다. 관직이란 언젠가는 교체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천박한 수령은 관청을 자신의 집으로 여겨 오래도록 누리려고 생각하다가 하루아침에 상부에서 연락이 오거나 소식이 있으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서 마치 큰 보물을 잃어버린 듯하고, 처자식들은 서로 돌아보며 눈물을 흘린다. 아랫사람들은 몰래 쳐다보며 비웃으니 관직을 잃은 것 이외에 잃는 것이 또한 많다.”

원래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인 양 생각하다가 다 내어놓고 떠나가려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있다. 이런 경우 그가 잃은 것은 관직만이 아닐 것이다. 가식적이었겠지만 어쨌든 겉으로 보여 왔던 인품까지 송두리째 사라지는 장면이다. 천박하다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요즘의 속된 말로 바꾸어 보면 ‘찌질하다’는 말이 잘 어울릴 듯하다. 그럼 떠나는 사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현명한 수령은 관청을 여관처럼 여겨 마치 이른 아침에 떠날 것처럼 하여 장부를 깨끗이 정리하고 짐을 묶어두고서 항상 매가 가을에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훌쩍 날아가려는 듯이 하여, 조금도 세속에 얽매이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닌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이니 아무 연연할 것 없는 편안한 마음이다. 이런 사람은 짐도 아주 단출할 것이다. 옛날 어떤 이가 수령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지고 갈 짐이 아무것도 없어 타고 가는 배가 너무 가벼워 무게를 맞추기 위해 돌을 싣고 돌아왔다고 하는데, 청렴한 관직 생활을 하였다면 가벼운 것은 마음만이 아니라 가지고 돌아갈 짐의 무게도 그에 비례해야 할 것이다. 자의건 타의건 자리를 떠나는 분들은 마음과 짐이 얼마나 가벼운지를 생각하면,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다산(茶山)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로 실학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정약용#목민심서#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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