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정부, ‘남녀의원부동석’ 규정 만들어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5일 20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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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여성의원들이 남성의원과 함께 회의실에 마주 앉아 의정을 논의할 수 없다는 ‘남녀의원부동석(男女議員不同席)’ 규정을 만들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13일 치러진 사우디 지방선거에서는 1932년 건국 이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돼 2016명의 지방의회 의원 중 38명의 여성의원이 선출됐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방행정부는 최근 남성 의원과 여성 의원이 함께 회의를 할 경우에는 같은 공간에 모이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4일 보도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남녀 의원은 별도의 회의실을 사용해야 하며, 화상 회의를 통해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 화상 회의를 하더라도 남성 의원은 여성 의원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으며 얼굴을 볼 수는 없다.

사우디의 여성 참정권 인정은 지난해 1월 타계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전 국왕의 결정에 따라 이뤄졌다. 압둘라 전 국왕은 ‘아랍의 봄’ 이후인 2011년 9월 국왕 최고 정책자문기구인 ‘슈라위원회’ 연례 연설에서 “2015년부터 여성이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하거나 투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제 군주제인 사우디는 국회의원선거가 없어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하거나 투표하는 것이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는 주요 경로다. 지방의회는 지방정부의 활동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선관위는 여성 후보자들이 남성 옆에 서서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을 금지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니캅(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 전통의상)’으로 가린 여성 후보자들은 여성 유권자에게는 직접 연설할 수 있지만 남성들이 있으면 칸막이 뒤에서 연설해야 했다. 텔레비전 방송으로 유세할 때도 남성 대변인을 통해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대신 소셜 미디어를 통한 선거 운동은 허용됐다.

사우디 정부가 새로 만든 ‘남녀의원부동석’ 규정에 대해 ‘슈라위원회’의 위원인 투라야 알아라예드는 “새로운 규정은 압둘라 국왕이 만든 선례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압둘라 국왕은 2013년에 여성을 처음으로 슈라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으며, 여성과 남성이 같이 앉아 회의하는 것을 허용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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