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열성 팬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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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두 스포츠부장
이현두 스포츠부장
프로야구 한화의 김성근 감독은 ‘야신(야구의 신)’으로 불린다. 2002년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승장 김응용 삼성 감독이 패장 김성근 LG 감독을 향해 “마치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고 말한 뒤 그의 별명은 야신이 됐다. 하위권 팀을 맡아 빠른 시간 안에 상위권 팀으로 변모시키는 데 있어서 역대 최고라는 그의 솜씨를 보면 별명이 크게 과장된 것도 아니다.

야구팬들만 그를 신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50대 명퇴자들에게도 아마 그는 신으로 보일 것이다. 올해 74세가 된 그는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를 통틀어 국내 프로스포츠 팀의 감독들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두 번째 연장자인 프로배구 GS칼텍스의 이선구 감독보다도 열 살이나 많다. 프로야구 감독 중 가장 어린 조원우 롯데 감독과의 차이는 29세나 된다.

프로야구 감독은 해마다 대한민국에서 10명만 할 수 있는 자리로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 만큼 파리 목숨으로 비유될 정도로 수명도 짧다. 계약 기간과 상관없이 중도에 잘리는 감독들도 허다하다. 그런 자리를 그가 오랫동안 지킬 수 있는 데는 무엇보다도 그의 지도력이 아직까지는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한 힘에는 팬들의 지지도 있었다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현역 감독은 물론이고 역대 감독들을 통틀어 그는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감독이다. 현역으로 뛰고 있는 스타 선수들 못지않을 정도다.

특히 ‘김성근빠’라고 불릴 정도로 열성적인 팬들이 많다. 2011년 8월 SK 감독에서 경질됐을 때 그의 팬들은 경질 결정을 번복할 것을 요구하며 SK의 안방 경기장인 문학야구장에서 항의 시위까지 벌였다. 2014년 10월 한화 감독으로 부임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화는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 3년 연속 꼴찌를 했다. 2014년 시즌이 끝나자 한화는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김응용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고 새로운 감독을 물색했다. 이때부터 팬들은 움직였다.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팀 해체로 실직자가 된 김성근 감독을 영입할 것을 요구하는 글을 구단 홈페이지에 올리던 팬들은 급기야 한화그룹 사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구단 상층부와 충돌을 빚어 온 김 감독의 강한 카리스마 때문에 영입에 머뭇거리던 한화는 결국 팬들의 압박에 두 손을 들었다. 그렇게 김 감독은 팬들이 만들어준 프로야구 감독 1호가 됐다.

그동안 팬들의 압력에 밀려 구단들이 감독을 경질한 사례는 종종 있었다. 팬들의 비난에 영입하려던 감독과의 계약을 포기하는 구단들도 있었다. 그러나 팬들의 압력에 떠밀려 구단이 영입한 감독은 김 감독이 처음이다.

그만큼 프로야구에서 팬의 위상은 높아졌다. 관중 동원을 포함한 전체 시장 규모에서 프로야구가 국내 프로스포츠 종목들 중에서 단연 최고가 된 것은 빠르게 늘어난 팬 덕분이다. 팬층이 두꺼워지면서 팬들의 힘은 구단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법칙이 프로야구에도 적용된 결과다.

사실 김성근 감독을 지지하는 팬들 못지않게 김 감독의 팀 운영 방식을 비판하는 프로야구 관계자와 팬들도 적지 않다. 팀 성적을 위해 선수를 혹사시킨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어찌됐건 김 감독은 지난해 팀 성적을 끌어올리며 적어도 한화 팬들에게는 바라던 결과를 안겨줬다.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향해 뛰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는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경질해야 할 정치인도 많다. 어렵지 않다. 열성 야구팬들처럼만 하면 된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
#김성근#야구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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