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친일행적 추적 56년… “친일청산 위해 여생 바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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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명인열전]<28>친일자료 수집 심정섭씨

심정섭 씨가 21일 광주 북구 자택에서 외조부 조경한 선생이 1943년 백범 김구 선생으로부터 받은 비서처 부 비서장 임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 임명장은 그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자료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심정섭 씨가 21일 광주 북구 자택에서 외조부 조경한 선생이 1943년 백범 김구 선생으로부터 받은 비서처 부 비서장 임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 임명장은 그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자료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망국의 통한’, ‘통분의 세월’, ‘일제의 순사들’, ‘대전자대첩(大甸子大捷)’, ‘민족의 기백’, ‘동방의 성좌’….

칠순을 넘긴 친일문제 연구가의 서재에 들어서자, 책장 가운데에 꽂혀 있는 두툼한 책들이 눈에 띄었다. 심정섭 씨(73)가 고교 교감으로 퇴직한 이후 10여 년 동안 써 온 책들이다. ‘망국의 통한’은 2008년 국내 최초로 친일파 인사들의 행적과 경제 수탈 자료를 모아 발간한 책이다. ‘대전자대첩’은 독립운동가인 외조부 백강(白岡) 조경한 선생(1900∼1993)의 글과 독립운동 관련 논문, 서한 등을 실었다. 수백 권의 책과 자료, 원고가 빼곡히 채워져 있는 서재는 56년간 독립운동과 친일 자료를 수집한 그의 열정과 고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 외조부 흔적 찾기 56년

전남 보성군 복내면에서 태어난 심 씨는 청송 심씨 판사공파 20대 종손이다. 어릴 때 마을 사람들이 ‘대감의 손자’라며 치켜세우는 말을 자주 들었다. ‘대감의 손자라는데 도대체 대감은 누구일까.’ 그가 성장하면서 가졌던 막연한 의문이었다.

그 궁금증은 1956년 중학교 1학년 때 풀렸다. 산골 마을에서 보성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읍내에서 자취를 했다. 우연히 주인집 안방에 있던 ‘대동정론(大同政論)’이라는 잡지에서 외조부의 사진을 봤다. 책에는 1945년 당시 광복과 함께 귀국한 임시정부 김구 주석 등 국무위원 18명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그의 외조부였다. 까까머리 중학생은 그때부터 외조부의 흔적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대전자대첩’은 1933년 7월 15일 중국 왕칭 현의 대전자(다뎬쯔)에서 독립군 2500명과 중국 차이스룽(蔡世榮) 부대 2000명이 연합해 일본군 제73연대를 물리친 전투로, ‘청산리 전투’에 비견된다. 당시 백강은 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참모로 전투에 참가했다. 이후 임시정부 국무위원, 광복군 총사령부 총무처장 대리로 활약하다 광복 이후 귀국해 6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백강 선생의 외동딸 조연숙 씨가 심 씨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일본 헌병들에게 고문을 당해 평생 후유증을 앓다 2003년 세상을 떠났다. 심 씨는 어른이 돼 외조부한테 독립운동 관련 비사를 자주 들었다. 외조부는 1929년 대종교 후원을 받아 만주에 배신학교를 세웠는데 배신학교 입학생 가운데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한 김일성이 있었다. 심 씨는 “외조부가 생전에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은 약을 파는 약종상으로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백강은 6·25전쟁이 터진 직후 피란을 가다 전북 전주에서 인민군에게 붙잡혔을 때 김무정 중장을 만났다고 한다. 중국에서 독립투쟁을 하다 안면이 있었던 김 중장은 “김일성 주석이 스승(조경한)을 모셔 오라고 했다”고 하자, 바로 거절했다고 한다. 심 씨는 “외조부는 공산주의자들이 김좌진 장군을 암살하는 등 독립투사를 탄압한 것을 싫어했다”면서 “‘제자 김일성’이 공산주의자가 돼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덧붙였다.

5·16 군사정변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외조부를 직접 찾아왔다는 비사도 들려줬다. 당시 박 대통령은 백강에게 ‘만주군 중위로 근무했지만 선생의 부하인 적도 있었다’고 고백하며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외조부는 이승만 대통령이 임시정부에서 배척당할 위기에 놓였을 때 그를 도운 공로로 1950년대에 국무총리, 장관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독립운동가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어요. 그만큼 강직한 분이셨죠.”

○ 독립운동과 친일 사료 1만 점 수집


심 씨는 조선대부속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1959년 광주 동구 계림동 헌책방에서 ‘대동정론’과 재회했다. 책방 주인에게 사정을 하다시피 해 구입한 이 책은 평생 동안 독립운동과 친일 행적을 추적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1961년 남북대화를 촉구하는 전남통일촉진고등학생연맹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5·16 군사정변으로 반혁명 용공분자로 몰려 2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당시 대학생연맹 위원장은 1997년 괌 비행기 사고로 숨진 신기하 의원이었다. 심 씨는 1963년 보성농고 3학년에 복학한 뒤 이듬해 전남대 농대에 입학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1971년 교편을 잡았다. 2004년 광주 송원여자정보고 교감으로 명예 퇴직할 때까지 근현대사 자료를 모았다. 월급은 물론이고 야간 보충수업으로 받은 돈까지 털어 넣었다. 항일 관련 서적이나 자료가 있다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56년간 모은 자료는 임시정부 공문과 애국지사들의 친필, 사진, 문집 등 독립운동 사료를 비롯해 친일파 행적 자료 등 1만여 점에 달했다. 그는 자료들 가운데 백강의 임시정부 국무위원 임명장, 비서처 부비서장 임명장과 친일파가 임시정부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서 발행한 광화(光化)라는 잡지, 1935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친일파 명단에 가장 애착이 간다.

그는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친일 청산을 위한 책 3권과 민족정기 선양을 위한 독립운동 관련 책 3권 등 서적 10여 권을 발간했다. 수집한 자료 4663점을 2012년부터 최근까지 민족문제연구소에 기증하고 남아 있는 자료는 독립기념관에 보낼 생각이다.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친일 청산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평생을 노력했습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역사적 진실을 찾기 위해 매진하겠습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친일파#친일청산#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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