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태원]옥토버 서프라이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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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정치부 차장
하태원 정치부 차장
태평양을 건너오며 의미가 달라지는 용어가 종종 있는데 ‘옥토버 서프라이즈(10월의 충격)’도 그런 표현 중 하나일 것 같다. 미국 정계에서 통용되는 본래의 뜻은 대통령 선거(11월 첫째 월요일 다음 날인 화요일) 직전 선거의 판도를 뒤흔들 만한 파괴력을 갖춘 ‘한 방’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10월이란 시점에 발생하는 대형위기 상황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확대해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10월의 한반도에는 수많은 옥토버 서프라이즈 소재가 꿈틀거린다.

‘카오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야권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재신임 문제가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통합보다는 분열의 힘이 지배하는 듯하다. 활동시한이 임박한 당 혁신위원회가 중진의원 용퇴론의 기치를 들고 김한길 박지원 의원 등을 ‘살생부’에 올린다면 10월에 분당(分黨) 에너지가 폭발할 가능성도 있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하는 시점도 10월이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실패로 정치적 곤경에 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도 10월은 위기의 계절이 될 것 같다. 정치 생명을 담보로 추진했던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무산을 계기로 한 친박계의 10월 대공습설(說)이 현실화한다면 여당도 내전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 ‘Y(유승민) 다음은 K(김무성)’라는 말도 나돈다.

‘원박(원조친박)’을 자임하는 김무성이 친박(또는 청와대)과 건곤일척의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은 승자독식의 권력 속성 탓이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 당시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 대표를 ‘사심(私心) 있는’ 후보로 규정한 뒤 차기 대선 불출마 선언을 집요하게 압박했다.

당시 김 대표는 “내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3개월 안에 끌어내리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른바 ‘친박 실세’”라고 했을 정도로 친박과 비박 간 감정의 골은 깊다. (※친박 진영은 “설의 최초 유포자는 김무성 본인”이라고 반박했다.)

여야 간 정쟁도 모자라 차기 총선에서 공천 주도권을 쥐기 위한 당내 계파 갈등으로 세월만 보내고 있는 정치권에 한반도를 둘러싼 제(諸) 세력의 충돌이 절박하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이미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예고한 북한은 10월 10일 당 창건기념일을 전후해 구체적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패전 70년 만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한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은 북한의 탄도미사일(북한은 인공위성이라고 주장) 발사를 직접적 안보위협으로 간주할 것이 뻔하다. 일본이 군사적 대응카드를 만지작거린다면 동아시아를 자신의 ‘앞마당’으로 보는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중국 전승절 참관 외교를 성공적으로 마친 박근혜 대통령의 10월 워싱턴행(行)에도 전에 없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중국과의 밀월모드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이 우리 대외정책의 기축(基軸)임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생긴 탓이다.

‘주미야중(晝美夜中·낮에는 미국 편, 밤에는 중국 편)’하는 것 아니냐는 뼈 있는 농담이 박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거론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한미관계의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이런 형태로 올 수도 있다.

풍설(風說)을 너무 과장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9일 후 시작될 10월에는 ‘에이 설마…’ 하고 넘겨버리기엔 중대한 불안 요인이 지뢰밭처럼 깔려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 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하태원 정치부 차장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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