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陸士 효시는 조선경비대 아닌 신흥무관학교가 돼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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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신흥무관학교 발자취를 따라]
<下>우당-범정 손자 이종찬-장호성 현지 대담

신흥무관학교 설립지인 중국 지린 성 류허 현 싼위안푸 진 쩌우자 가에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왼쪽)과 장호성 단국대 총장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들은 독립투사 후손으로서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에 온 소회를 밝혔다. 뒤에 보이는 다구(大古) 산에 신흥무관학교 훈련장이 있었다. 류허=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신흥무관학교 설립지인 중국 지린 성 류허 현 싼위안푸 진 쩌우자 가에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왼쪽)과 장호성 단국대 총장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들은 독립투사 후손으로서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에 온 소회를 밝혔다. 뒤에 보이는 다구(大古) 산에 신흥무관학교 훈련장이 있었다. 류허=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3500명 중 11%만 신원이 규명돼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요.” 6월 8일 중국 지린(吉林) 성 류허(柳河) 현 싼위안푸(三源堡) 진 쩌우자(鄒家) 가. 버려진 들판 위에 선 독립투사 후손들은 벅찬 감격과 더불어 새로운 다짐을 밝혔다. 이곳에는 경술국치 한 해 뒤인 1911년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1867∼1932)을 비롯한 신민회원들이 세운 신흥무관학교 터가 아직 남아 있다. 당시 우당 옆에는 입학생들을 조선 땅에서 만주로 비밀리에 인솔한 범정(梵亭) 장형 선생(1889∼1964)이 있었다. 신흥무관학교가 개교한 지 104년이 흐른 지금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후손들이 만주벌판을 찾았다. 우당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79)과 범정의 손자 장호성 단국대 총장(60)은 다구(大古) 산 뒤로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조부의 독립운동에 얽힌 소회를 풀어냈다. 동아일보는 10일자 르포기사에 이어 하편으로 이들의 대담을 싣는다. 》

▽이종찬 전 원장=(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쪽이 저희 할아버지 식구들이 모여 산 곳입니다. 저기 보이는 다구 산에 신흥무관학교 훈련장을 두었지요. 일본군 감시를 피하려고 마을에서 한참 들어간 외진 곳을 택한 거라고 합니다.

▽장호성 총장=중국 현지 주민들의 텃세 때문에 학교 이름도 한동안 ‘신흥강습소’로 짓고, 교직원이나 학생들도 중국식 복장을 갖춰 입었다고 하니 이국 타향에서 얼마나 고충이 컸겠습니까. 조부께서 1911년 2월 중국으로 망명하고 나서 1년에 최대 600명의 입학생들을 이리로 데려왔다고 들었습니다. 나중에 사람 수에 비해 교사가 좁아서 인근의 하니허(哈泥河)로 학교를 옮겼습니다.

▽이=그런데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3500명 가운데 현재 400명밖에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아직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분들이 너무 많아요. 한반도에서 만주까지 600리 길인데 그 사이에 수많은 연락망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자료로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연락망뿐 아니라 이 외진 곳에 물자 보급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 밝혀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 많습니다.

▽장=동감입니다. 단국대도 독립투사가 세운 학교답게 선열들의 행적을 제대로 규명하는 데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당시 독립항쟁의 거점이 만주였던 점을 감안해서 중국 동북 3성 안에 독립운동 연구센터를 두고 현지 조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애국애족의 도량으로 군사훈련까지 실시한 곳인데도 신흥무관학교가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효시가 아니라는 사실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육사는 1946년 미 군정청이 설립한 ‘조선 경비 사관학교’를 효시로 삼고 있습니다. 북한도 1932년 빨치산 투쟁에서 시원을 찾기 때문에 김일성이 태어나기 전 설립된 신흥무관학교에 관심이 없습니다. 대한제국이 망한 뒤에도 의병과 독립군, 광복군으로 꾸준히 이어져 오늘날 대한민국 군대가 나온 겁니다. 비록 나라가 망했어도 군 간부를 양성한 것이지요.

▽장=일제강점기 역사를 ‘죽은 역사’로 방치하지 말고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광복 이후 조부께서 독립운동가분들을 모시고 학생들 앞에서 연회를 베풀고, 후손들에게 대학 장학금을 꾸준히 지원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맞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후손들의 몫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이제는 국내에도 임시정부 기념관이 들어설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임시정부 청사가 있었던 중국 상하이 등지에 기념관이 이미 건립됐는데, 해방된 지 70년이 되도록 정작 우리나라에 임정 기념관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장=임정 얘기를 들으면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조부께서 중국 단둥 시내의 이륭양행 건물 안에 설치된 ‘임정 안동교통사무국’과 소통하면서 군자금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들었습니다. 후손들의 손으로 임정 기념관을 짓는다면 의미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끝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에도 등장하는 김원봉, 김무정 등 연안파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재고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국은 궈모뤄(郭沫若)처럼 한때 국민당에 몸담은 인사들도 혁명열사로 추존해 공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항일투쟁에 대한 공적만큼은 정당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대담자 약력 ::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1936년 중국 상하이 출생
―1960년 육사 16기 졸업
―제11∼14대 국회의원
―1998∼1999년 초대 국가정보원장
―현재 우당장학회 이사장

◇장호성 단국대 총장

―1955년 서울 출생
―1978년 서강대 전자공학과 졸업
―1993년 미국 오리건주립대 공학박사
―1994∼2000년 한양대 교수
―2008년∼ 단국대 제15대 총장

류허=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신흥무관학교#독립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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