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22>화장에 공을 들이는 진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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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썰미 좀 있다는 외국인들이 신기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비행기 착륙 전 한국 여성들의 행동이다. 안내방송이 나오면 약속이나 한 듯 콤팩트를 꺼내 얼굴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빙산의 일각이다. 서울 시내로 들어오면 경이로운 장면을 연이어 만나게 된다. 운전하던 여성이 신호대기를 틈타 눈썹을 그리는가 하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마스카라를 바른다. 지하철 타고 가며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달인급 실력’은 미용전문가마저 감탄하게 만들 정도다.

이미 익숙한 사람들에겐 그게 대수냐 싶겠지만 적지 않은 나라에서 화장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는 게 에티켓이란다.

여자들은 ‘화장발’에 대한 독특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아침에 열심히 바르고, 점심 무렵 또 바르고, 저녁 약속이 있으면 정성껏 고친다. 집에 돌아와 깨끗하게 지워내고는 또 다른 것을 바른다. 왜 이렇게 화장에 공을 들이는 것일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그들의 본성이기도 하지만 화장이야말로 확실한 차별화 수단이기 때문이다. 장점은 더욱 강조하는 반면 단점은 커버함으로써 ‘더욱 예쁜 나’를 연출할 수 있다. 탁월한 화장술은 이성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도 한몫을 해낸다.

그런데 ‘다르게 보이려는 것’보다 앞서는 욕구가 ‘자기 기분 좋으려고’라는 분석도 있다. 코스메틱 사이언스 저널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화장하는 습관을 유지·발전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감각(시각 촉각 후각)을 자극함으로써 좋은 기분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마디로 ‘남 보여 주기용’보다는 ‘자기만족용’이라는 것이다. 화장품업계의 거물 에스티 로더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아이들과 남편에게 밥을 먹이고 나면 자기 배를 채우기 전에 화장품에 먼저 돈을 쓴다.” 화장의 만족감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보다 우선일 수 있다는 의미다.

화장은 ‘일상을 바꾸는 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화장으로 기분 좋아진 여성이 남들의 달라진 시선이나 반응까지 얻게 되면 더한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양상은 나이도 초월한다. 미국 연구기관이 병원에 입원한 고령의 여성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화장을 한 이가 그렇지 않은 이에 비해 자신감을 가지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따라서 화장은 하루를 만족스럽게 지내기 위한 일종의 의식일 수 있다. 정성껏 화장을 하고 하루를 시작해 수시로 고쳐가며 지내다 보면 조금 달라진 하루를 보내고, 그게 쌓이면 일상이 바뀐다. 행복해서 웃기도 하지만 웃기에 행복해질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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