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교양서 - 어린이책까지 公기관이 만들어 파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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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10곳 중 1곳 상업출판

최근 대형 출판사 편집자 A 씨는 인문 역사서 시장 조사차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검색하다 깜짝 놀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이미 이 분야 책을 상당수 출간해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 그는 “학술서만 놓고 보면 주요 출판사보다도 더 많은 책을 공공기관이 출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단행본을 제작해 시중에서 판매하는 경우가 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27일 발표할 공공기관 상업출판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300여 개 공공기관을 전수 조사한 결과 이 중 10%가량이 자체적으로 상업출판을 하고 있었다. EBS와 대학 출판부는 제외한 수치다.

실제로 교육부 산하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는 ‘조선의 수학자 홍정하’ 등 일반 교양서를 판매하는 신간 코너와 함께 “교보문고 등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구입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또 ‘장복이 창대와 함께하는 열하일기’ 등 어린이용 도서까지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KOTRA, 한국국방연구원, 한국영상자료원도 단행본을 만들어 시중 책값과 비슷한 1만∼2만 원에 서점에서 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역시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 등 역사서와 ‘심경 철학 사전’ 등 교양서를 유통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대부분 별도의 출판부를 갖고 있으며 대형 출판사의 편집자를 영입하기도 한다.

공공기관들은 상업적 목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고전번역원 출판부 측은 “내부에서도 공공기관이 책을 시중에 팔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며 “하지만 책의 존재를 알리려면 서점에 유통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방연구원 최원장 출판과장도 “책 제작비도 꽤 되는 데다 전문 서적이어서 많이 팔리지 않아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데도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계는 공공기관의 책 판매보다 △전문서적 외에 인문, 역사, 아동 등 일반 단행본을 내는 점 △세금으로 만든 책을 비싼 가격에 파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한다. B출판사 편집자는 “공공기관이라면 상업 출판사가 낼 수 없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일반적인 교양, 인문서를 만들어 팔면 출판계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출판문화협회 측 관계자는 “국가 예산으로 만든 연구 결과물이라면 전자책, 문고본 등으로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거나 저렴하게 보급해야 하는데 상업 출판사와 비슷한 가격에 판다”며 “공공기관의 상업출판을 줄이는 방안을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자 확보도 논란거리다. C출판사 대표는 “역사·철학서는 얼마 팔리지 않아 인세로 저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충분히 하기 어려운데 공공기관은 원고료 형태로 한 번에 저자에게 지급해 출판사들이 저자를 뺏기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학중앙연구원 윤지선 출판실장은 “잘 팔릴 책이면 저자들은 공공기관보다 일반 출판사와 계약하려 한다”고 반박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공공기관이 연구 결과물을 내면 민간 출판사가 외주로 책을 잘 만드는 식의 윈윈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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