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철호]‘총장과의 대화’ 계약직은 따돌린 서울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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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노동강도-저임금 서러운데 ‘서울대 구성원’ 자부심 상처까지

이철호·사회부
이철호·사회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 직원은 크게 두 부류다. ‘법인직원(정규직)’과 계약직으로 들어온 ‘자체 직원’. 여느 기업처럼 서울대 계약직원들도 정규직원에 비해 노동 강도가 높고 임금은 턱없이 낮다. 그래도 이들은 “우리도 서울대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간다”는 말을 입버릇 삼아 한다.

이런 서울대 계약직들의 ‘소박한 자존심’마저 크게 상처 입는 일이 일어났다. 서울대 본부가 7일 오후로 예정된 성낙인 총장과 계약직원이 주축인 노동조합인 ‘대학노조 서울대지부’의 면담에서 참석 자격을 ‘정규직’에 한정하기로 한 것이다. 대학노조의 정규직 근로자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홍성민 지부장과 김영숙 부지부장 등 6명뿐이다. 과거에는 역대 총장들이 정규직 여부와 상관없이 대학노조 간부 전원과 면담해 왔다.

대학노조와 성 총장의 첫 만남은 노조 측의 ‘삼고초려’ 끝에 겨우 성사됐는데 서울대 본부가 2011년 ‘서울대 법인화’ 이후 정규직으로 신분이 전환된 ‘노조 지부장’, 부지부장만 참석하라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기자와 만난 복수의 노조 관계자는 “총장실에서 총장이 임명하지 않은 계약직원들까지 만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서울대 총장이 노조 추산 1100여 명(전체 직원 중 약 51%)에 달하는 계약직원들을 직접 뽑지 않은 것은 맞다. 법인화 때 바뀐 정관에 따라 서울대에서는 총장 인사권을 위임받은 각 단과대와 기관장들이 필요에 따라 계약직원을 마음껏 선발한다. 이 때문에 서울대 본부는 자기 학교 직원이 몇 명인지조차 제대로 파악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서울대의 무관심 속에 계약직원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같은 직급이라도 연봉이 1000만 원이나 차이가 나고, 초과수당은 포기한 지 오래다. 대학원 계약직원 A 씨는 “총장님이 서울대 정규직원들의 부당 수당 문제를 제기한 동아일보 기사(10월 14일자 A12면)가 나오기 전에는 계약직원 문제를 잘 몰랐다는 말이 파다하다”며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총장 앞 발언권도 보장하지 않는 건 차별 시정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는 걸 보여준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는 “한꺼번에 여러 명을 만나기보다 대표자격인 지부장을 면담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현재 전국 대부분의 국·공립대가 서울대를 따라 법인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다른 학교들이 서울대의 후진적인 계약직 노동환경마저 그대로 따라할까 우려스럽다.

이철호·사회부 irontiger@donga.com
#총장과의 대화#계약직#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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