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배우, 무대]빛으로 연출한 거울같은 호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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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즐거운 복희’

빛을 반사시켜 호수를 만든 연극 ‘즐거운 복희’. 나팔수의 시신을 찾는 방안을 이야기하는 펜션 분양자들의 모습이 호수 표면에 비친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빛을 반사시켜 호수를 만든 연극 ‘즐거운 복희’. 나팔수의 시신을 찾는 방안을 이야기하는 펜션 분양자들의 모습이 호수 표면에 비친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호수를 채운 것은 물이 아니라 빛이다.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즐거운 복희’(이하 ‘복희’)의 핵심 장치인 호수는 빛의 반사를 통해 탄생했다.

펜션 분양자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내용을 그린 ‘복희’에서는 호수를 둘러싸고 일련의 사건이 벌어진다. 펜션이 자리 잡은 곳도 호숫가이고 복희와 사랑에 빠져 배를 타고 펜션을 떠나려던 나팔수가 빠져 숨진 곳도 호수다. 장군이었던 복희 아버지의 묘를 펜션 근처에 조성해 매일 복희에게 조문할 것을 요구하던 펜션 분양자들은 나팔수가 숨지자 호수에서 나팔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까지 만들어낸다. 검게 일렁이는 호수는 인간의 욕망과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지를 담담히 비춰낸다.

이강백 극작가는 대본을 쓸 때부터 공연장으로 드라마센터를 염두에 뒀다. 객석이 무대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원형 무대여서 호수를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공연장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처음에는 물로 호수를 연출하려고 했지만 펜션 사무실을 연출할 공간도 필요했다. 그래서 빛을 반사시켜 호수를 제작하기로 했다. 손호성 무대디자이너는 “무대 바닥에 거울을 깔려고 했지만 바닥이 고르지 않은 데다 거울이 잘 깨져 궁리 끝에 가구를 윤기 나게 만드는 재료인 포마이카를 떠올렸다”고 했다. 검은색 포마이카 바닥재를 깔았다. 포마이카 바닥재는 연극 ‘헤다 가블러’(2012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도 사용돼 주인공의 뒤틀리는 심리를 반사되는 빛을 통해 그려냈다.

관건은 조명이었다. 조명을 비췄을 때 바닥의 빛이 객석이나 호수 원경을 그린 배경막에 반사되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조명의 각도를 더 가파르게 조절했다. 김창기 조명디자이너는 “일반 공연 때는 45∼60도 사이의 각도로 배우에게 조명을 비추는데 ‘복희’는 60∼70도로 비추도록 조명기 위치를 모두 바꿨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깊은 호수가 태어났다.

복희가 호숫가 나무 덱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독백할 때 호수에는 복희의 모습이 반짝인다. 나팔수 시신의 위치를 몰라 시신을 건져내기 어렵다는 점을 합리화시키며 우산을 쓴 채 호수를 둘러보는 펜션 분양자들의 모습도 호수 표면에 어른거린다. 그들의 흰색 우산은 푸른 조명 아래 파랗게 변한다. 냉혹한 인간의 욕망을 섬뜩하게 보여주는 파란색 우산 역시 호수는 깊고 또렷하게 반사시킨다. 21일까지. 2만5000원. 02-758-2150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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