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태호]쌀 관세화, 더는 늦출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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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우리는 1995년과 2004년 등 두 번에 걸쳐 쌀 관세화를 유예했다. 1995년에서 2014년까지 20년간 쌀 수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이것은 세계무역기구(WTO)의 관세화 원칙에 대한 예외이므로 WTO는 예외를 인정해주는 대가를 요구했고, 우리는 매년 40만9000t의 외국 쌀을 영원히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

쌀 관세화 유예는 점점 한국에 짐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2년 의무도입물량을 사들이고 관리하는 데 지불한 농업예산은 무려 3300억 원에 달했다. 이 돈을 쌀 생산 농가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사용했더라면 더욱 유익했을 것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국내 소비량의 9%에 이르는 막대한 의무도입 쌀이 국산 쌀보다 상당히 낮은 값에 거래되므로 국산 쌀이 시장에서 정당한 가격을 받게 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농업계 일각에서는 관세화로 전환하여 외국 쌀이 관세를 물고 수입되게 하면 쌀 수입이 증가할 위험이 있으니 관세화를 계속 유예하면서 의무도입량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소위 ‘현상 유지’ 협상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에 두 번의 관세화 유예 협상을 하면서 의무도입량을 늘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선례, 그리고 이번에 필리핀이 5년간의 한시적 관세화 의무면제(waiver)를 받으면서 의무도입량을 2.3배 증가시킨 사례를 보면 현상 유지를 관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관세화 유예가 WTO의 ‘예외 없는 관세화’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대가로 상당한 벌칙(의무도입량 증가)을 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공감대가 WTO 회원국들 간에 널리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관세화로 전환하는 경우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상당히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더이상의 외국 쌀 도입을 막을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관세화로 전환한 일본과 대만은 모두 원하는 만큼 높은 관세를 부과하였다.

요약하자면,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관세화로 전환하면서 수입되는 쌀에 되도록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관세화를 계속 유예하면서 가능한 한 의무도입량이 적게 증가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의 선례와 다른 나라의 사례, 그리고 WTO의 기본 원칙을 고려해 볼 때 첫 번째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위험성이 낮다고 할 수밖에 없다.

위험을 줄이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엄중한 상황에서 우리 쌀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편견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쌀 농업을 위한 최선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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