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시대를 풍미했던 테니스 영웅의 땀과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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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OPEN)/안드레 애거시 지음·김현정 옮김/614쪽·1만9500원·진성북스

1987년 4월 서울 올림픽코트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제1회 KAL컵 코리아오픈. 프로 데뷔 2년 차인 17세 소년이 결승까지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곱상한 외모에 갈깃머리를 흩날리며 소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주인공은 앤드리 애거시(44·미국)였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지닌 애거시의 인생은 책 제목처럼 코트 안팎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과정이었다.

이란 복싱 대표였던 애거시의 아버지는 미국 이민 후 낳은 아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아버지는 내가 매일 2500개의 공을 치면 1년이면 100만 개 가까운 공을 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곱 살 애거시는 테니스가 싫었는데도 계속 공을 쳐야 했던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한국 스포츠 스타의 스토리와 닮았다.

애거시는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테니스의 기존 질서와 맞섰다. 귀걸이, 데님 반바지에 원색 티셔츠 같은 파격적 패션을 선보인 애거시는 인기 여배우 브룩 실즈와의 결혼과 이혼, 테니스 여제 슈테피 그라프와의 재혼으로도 화제를 뿌렸다. “그라프의 임신 소식을 처음 들었던 스시바가 바로 실즈와의 관계가 나빠지기 시작한 그 레스토랑이었다. 처절한 참패의 코트가 가장 달콤한 승리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

2006년 은퇴할 때까지 애거시는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메이저 우승 8회를 포함해 60회 단식 정상, 역대 최고령 세계랭킹 1위의 눈부신 성적을 남겼다. 말년엔 극심한 허리 부상을 이겨내려고 바늘 길이가 18cm에 이르는 진통주사를 맞으며 분투했던 그는 고향 라스베이거스 빈민가에 4000만 달러(약 415억 원)를 들여 저소득층을 위한 중등교육 대안학교를 세웠다. 라켓을 통해 자신의 길을 열었던 그가 이젠 상처 받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전도사가 됐다.

이 책에서 애거시는 때론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하는 순간을 얘기하듯 풀어간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발머리 꼬마에서 풀어헤친 헤어스타일의 반항기를 거쳐 대머리까지 지면을 수놓은 사진은 또 다른 볼거리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오픈(OPEN)#테니스#앤드리 애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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