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 vs 책]의도된 결함과 경제성장의 패러독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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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 사회를 넘어서/세르주 라투슈 지음·정기헌 옮김/139쪽·1만2000원·민음사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질까/데이비드 C 코튼 지음·김경숙 옮김/446쪽·1만8000원·사이

1948년 이후 남한은 사회주의 북한과 다른 길을 걸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다. 하지만 20세기 내내 남한에선 근검절약이 미덕이었고 물신주의와 소비주의에 물든 사람은 ‘속물’로 불렸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완전히 달라졌다. 고가 사치품이 ‘명품’으로 포장되고 과소비는 ‘쇼퍼홀릭’으로 미화되는 사회가 됐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사람은 천생 종북 좌파인걸까. 그래서 “20세기를 생활하는데 19세기의 도덕성밖에 없으니 나는 영원한 절름발이로다”라는 천재 시인 이상의 탄식을 21세기 버전으로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걸까. 프랑스 좌파 할배와 미국의 우파 할배가 이구동성으로 절름발이가 된 것은 성장 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프랑스의 탈성장이론가인 세르주 라투슈(74)는 ‘낭비 사회를 넘어서’에서 소비주의의 삼종 세트로 광고, 소비금융, 그리고 ‘계획적 진부화’를 지목한다. 광고는 불필요한 욕망을 부채질하고 소비금융은 소득, 직업, 자산에 상관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용대출을 남발한다. 그 화룡점정이 ‘전략적 폐기화’로도 번역되는 계획적 진부화다.

계획적 진부화란 상품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멀쩡한 제품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일부러 못 쓰도록 만드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 XP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 멀쩡한 구식 컴퓨터를 몽땅 무용지물화한 것을 보라.

“우리는 광고를 거부하고 대출을 거절할 수 있지만 제품의 기술적 결함 앞에서는 대부분 속수무책이 된다. 전기 램프에서 안경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의 필수적인 보조 수단이 된 기계나 기구는 특정 부품의 의도된 결함으로 인해 고장을 일으키는 시점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그런 새 부품이나 수리가 가능한 곳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고스란히 자원 낭비와 환경 파괴란 업보로 돌아오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제품이 죽어야 소비가 산다’는 소비지상주의는 결국 최신 소비 트렌드를 좇지 않는 인간마저 쓸모없고 진부한 존재로 낙인찍는 반인간주의까지 초래한다.

이번엔 보수적 미국 할배 이야기를 들어보자.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질까’의 저자인 데이비드 C 코튼(77)은 보수 백인 중산층임을 자부한 지식인이었다. 그가 명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조직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유는 제3세계에 침투하는 공산주의를 박멸하기 위해서였다. 하버드대 교수 자리도 박차고 포드재단과 미국국제개발처(USAID) 소속으로 30년 넘게 중남미와 동남아에서 일한 것도 현대적 경영기법과 기업가 정신으로 제3세계 빈곤을 퇴치하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미국으로 돌아온 그의 생각은 확 바뀌었다. 오로지 경제 성장에만 눈이 먼 자본주의적 삶이 제3세계 주민의 삶을 파괴할 뿐 아니라 그 심장부마저 황폐화시키고 있음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국민소득이 얼마나 많이 늘었건 대부분의 서구 사회에선 만성 질환이 늘고 범죄율이 증가했으며 실업률이 치솟고 더 많은 결혼이 이혼으로 끝이 났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무조건적인 성장 추구’는 완전히 사회적 환경적 재앙이 되었다.”

그는 경제성장률 측정의 허구성도 폭로한다. 유조선 침몰로 인한 해양오염 제거 비용과 폭탄테러 복구 비용이 모두 경제산출량에 대한 순기여로 처리된단다. 인간과 환경에 재앙을 가져오더라도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면 사회적 이익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그럼 이 미국 할배는 좌파가 된 걸까.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나는 시장경제와 사유재산 제도의 중요성을 변함없이 신봉한다. 그렇지만 현대의 많은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나는 큰 정부를 좋아하지 않듯 대기업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부를 소유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특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라고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낭비 사회를 넘어서#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질까#경제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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