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잡스와 딱 하나만 안닮은 ‘애플의 천재 디자이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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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아이브/리앤더 카니 지음·안진환 옮김/420쪽·2만 원·민음사

애플의 디자인 총괄 수석부사장 조너선 아이브(47). 디자인 신동으로 태어난 그를 산업디자인 역사를 새로 쓴 거물로 키워낸 건 아버지와 영국의 교육제도였다. 은세공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였던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자신의 대학 작업실로 아들을 데려가 상상하는 무엇이든 만들도록 도와줬다. 아버지는 왕립 교육장학관이 돼 초중고교생들이 학과 시간 중 7∼10%는 디자인 테크놀로지 과목을 배우도록 하는 정책을 만든다. 그리고 아들은 이 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돼 관심분야가 넓고도 깊은 ‘T형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런던 디자인회사에 다니던 아이브가 애플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10년 후 유행할 제품을 구상하는 애플의 비밀 프로젝트였다. 애플은 세계의 유망한 디자이너들과 협업으로 이 사업을 진행했고, 여기서 두각을 드러낸 아이브를 발탁한 것이다.

27세에 애플에 입사한 아이브는 아이맥부터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까지 ‘i’로 시작되는 히트상품을 내놓는다. 아이브의 성공으로 애플은 기술이 아닌 디자인이 주도하는 기업이 됐다. 기술자들은 지금 가능한 기술에 제한을 받지만, 디자이너들은 미래에 가능한 무엇을 상상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브는 경쟁사들이 칩의 속도나 성능 향상에 주목하는 동안 ‘사람들이 이 제품을 어떻게 느끼기를 바라는가’를 고민하며 제품에 감성을 입혔다.

“우린 포커스 그룹 조사 따위는 하지 않는다. 현재의 디자인 맥락에서 내일의 기회를 간파하는 감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문하는 건 올바른 접근 방법이 아니다.”

성격이 좋은 점을 빼면 아이브는 사고방식까지 스티브 잡스와 판박이다. 이 책도 ‘스티브 잡스’(2011년)와 출판사가 같고 표지도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라는 부제를 빼면 거의 같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 같은 평전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실망할 것이다. 최고의 전기 작가가 주인공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집필한 ‘스티브 잡스’와 달리 이 책은 IT 전문기자가 ‘며느리도 모르는’ 애플의 무시무시한 비밀주의 장막을 뚫고 들어가 취재한 내용을 엮었다. 천재 디자이너 얘기를 하면서 작품 사진이 부실한 점도 아쉽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조너선 아이브#애플#T형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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