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이 南법원에 낸 친자확인소송 첫 승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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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한 부친 “北자식에도 유산을” 유언
새어머니-이복형제 유산 배분 반대에 南에 있던 딸, 北형제 손톱 구해 소송
대법 확정판결… 32억5000만원 상속

“꼭 북한의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물려줬으면 한다.”

1987년 평안남도 출신 윤모 씨(사망 당시 69세)는 북에 남겨둔 자식들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윤 씨는 6·25전쟁 때 2남 4녀 중 큰딸(현재 78세)만 데리고 남한으로 피란 온 뒤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남한에 정착한 뒤 권모 씨(79)와 재혼해 4남매를 더 낳았고 의사 경력을 살려 남한에서도 병원을 차려 100억 원대 자산을 모았다.

윤 씨가 숨진 뒤 큰딸은 형제들의 생사를 수소문했다. 2008년 미국과 평양을 왕래하는 재미교포 선교사의 도움으로 어렵게 북한 가족과 연락이 닿았다. 북에 남겨진 가족들이 ‘월남 반동가족’으로 분류돼 비참하게 살고 있고 어머니와 큰동생이 굶주리다 숨졌다는 사실도 알았다. 큰딸은 새어머니와 이복형제들에게 아버지의 재산을 북한 형제들에게도 나눠 주자고 제안했지만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자 큰딸은 선교사를 통해 북한 형제들의 머리카락과 손톱 조각, 자필 소송위임장 등을 받아 와 2009년 2월 북한 형제들 명의로 ‘전쟁 중 월남한 고인의 친자식임을 인정해 달라’는 친자확인 소송을 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7월 31일 “유전자 감정 결과 북한에 있는 4명의 원고가 고인의 친자녀라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북한에 거주하는 주민이 대한민국 법원에 친자확인 소송을 내 승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법원은 이들 북한 형제들이 별도로 낸 상속회복 청구소송에서 ‘이복형제와 새어머니는 상속 유산의 일부인 32억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조정했었다. 다만 지난해 시행된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이 상속분은 법원이 지정한 제3자이자 재산관리인인 변호사가 관리하고 있다. 향후 북한 형제들이 상속분을 가지려면 재산관리인을 통해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친자확인소송#북한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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