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데이비드 브룩스]정부가 나쁜 길로 갈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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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였던 클린턴 로시터(1917∼1970)는 “정부는 불(火)과 비슷하다. 잘 제어하면 무엇보다 유용하지만 통제를 벗어나면 잔학한 폭군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이중적이고 위협적인 정부의 특성을 공무원들이 명확히 알고 있기를, 국민은 기대한다. 또한 그들의 마음에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충정이 가득하길 원한다. 국민의 지혜를 존경하고 신뢰에 감사하면서 겸허한 자세로 일해주기를 바란다.

아울러 국민은 정부 공무원들이 유권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만큼 그들 자신을 두려워하길 희망한다. 공무원 스스로 세력화하는 경향을 경계하길 바란다. 불어나는 권력을 조금씩 덜어내기를 원한다. 다른 무엇보다 국민이 공무원에게 바라는 것은 강한 자기 절제력이다.

엉성한 봉합을 혐오하는 외과의처럼 훌륭한 정부 공무원은 본능적으로 세력화의 작은 낌새조차 혐오한다. 권세가 자신을 어떻게 타락시킬지 알기에 과욕 앞에서 한발 물러난다.

지금의 미국 공무원들에게서 이런 태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공무원 대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자기 일에 헌신적이며 저마다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들이 업무에 매진하는 정도는 다달이 받는 보수의 가치를 한참 뛰어넘는다. 하지만 권력욕을 자제하는 정부 공무원은 보기 어렵다.

미 국세청 스캔들과 법무부의 AP통신 기자 통화 기록 압수는 모두 정부의 과도한 권력화가 빚어낸 것이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정보기관의 무리한 일상적 도청을 묵인해왔다.

국세청 스캔들이 정치적 폭력행위였는지 부주의의 소치였는지 지금은 단언할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정부의 세금 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틀림없다. 매우 흔해빠진 편파적 반감이다.

만약 국세청 고위공직자들이 전문적으로 세분화된 업무시스템 속에 고립된 나머지 업무 중 ‘티 파티’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도덕적 정치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공무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보편타당한 인간적 상식을 망각한다면 진짜 무서운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 문제를 더 심각하게 여기는 분위기지만 더 고약한 쪽은 법무부 스캔들이다. 이 사건은 언론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도록 만든 치명적 침해다. 정부가 언제든 자유로이 전화 통화 기록을 추적할 수 있다면 누가 언론에 제보 전화를 하려 들겠는가. 이런 기본권 침해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법무부 당국자의 10여 명은 사퇴했어야 했다. 법무부에는 법률 전문가가 없는 걸까. 아니면 법대를 졸업하긴 했는데 법에 대해 배우지 못한 걸까.

모든 행정부는 권력 분산을 최소화하고 정보 누설을 차단하려고 노력한다. 논쟁의 범주를 축소하고 정보 유출 위험을 줄인다며 사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거부한다. 정치적 선전에 유용할 경우에만 검증에 호의적이다. 왜일까. 공무원들이 국민의 생활뿐 아니라 ‘정보’를 제어하려는 욕망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연방정부는 가치관 문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정보기관 수장들은 국민의 신뢰를 잃는 위험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심히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법학자 카스 선스타인은 저서 ‘더 심플하게’에서 “아주 작은 부추김으로 국민의 생활습관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 주장을 지지한다. 누군가 선스타인 교수와 같은 생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면 그를 신뢰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국세청과 법무부 사람들은 ‘작은 부추김’을 금세 ‘강한 떠밀기’로 바꿔치기할 것이다. 자제력을 가진 정부만이 국민의 믿음을 얻을 수 있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정부#국세청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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