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권선징악 속에 가려진 고전의 음험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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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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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기담 /유광수 지음/260쪽·1만4000원·웅진지식하우스

예나 지금이나 알게 모르게 가장 무서운 것이 가족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에는 끔찍한 가족의 이야기가 실린다. 어린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고 보험금을 타내려던 아버지, 게임을 하다가 어린아이를 굶겨 죽인 엄마, 친딸을 임신까지 시킨 인면수심의 아버지….

우리 옛이야기 속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효성스러운 아들, 절개를 지키는 열녀, 지엄한 남편과 정숙한 부인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오싹한 경우가 많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손순이 노모를 극진히 모시기 위해 어린 자식을 땅에 묻으려 했다는 이야기는 대표적인 ‘효자담’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가난한 살림에 하나라도 먹을 입을 덜기 위해 시도했던 ‘자식 살해’가 ‘효’로 치장된 것일 뿐이다.

저자는 고전소설 속에 나오는 계모, 첩, 기녀, 열녀 등 가부장의 욕망에 의해 일그러진 여성들의 본모습을 되살려낸다. 계모와 첩들은 왜 그렇게 사악하게 그려졌을까. 저자는 처첩 간의 위계질서, 과부 재혼 금지, 적서 차별 등의 배후에 조선시대 지배층인 사대부들의 기득권 지키기가 있다고 해석한다. 과부가 재혼해서 새로운 아들을 낳거나, 서자까지 관직에 진출하게 되면 벼슬자리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인과응보, 권선징악의 교훈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 고전소설 속 숨겨진 진실을 저자와 함께 읽으면 유쾌한 재미가 느껴진다. 기녀에게까지도 순결과 절개를 요구하는 남자들, 할 수 있는 것은 아이 만드는 것밖에 없는 무능력한 남자의 대명사인 흥부와 변강쇠, 가짜 남편에 대한 의심을 담은 쥐 변신 설화…. 그러나 ‘장화홍련’의 아버지가 딸에게 성적 학대를 한 것이 아니냐는 추론은 흥미를 위해 ‘너무 나간’ 듯하다.

고전소설 이야기를 현대의 가족 모습과 대비시키는 분석도 흥미롭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여우누이’에서 자식을 위해 간도 쓸개도 다 내주는 엄마는 자식의 과외공부를 위해 밤낮 없이 희생하는 요즘 부모들의 모습과 겹친다. 여름밤에 읽기에 공포소설보다 더 오싹한 가족기담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가족기담#권선징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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