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도덕적 인간도 한번 무너지면 와르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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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댄 애리얼리 지음·이경식 옮김/344쪽·1만6000원·청림출판

《야근시간을 부풀려 기록하거나 회사의 사무용품을 집에 가져가서 쓰는 직장인, 환자에게 불필요한 치료를 권하는 의사, 커닝하는 학생….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선량한 사람’ 중에도 이런 이들은 많다. ‘이 정도 속임수는 괜찮겠지’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스스로 정직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사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그런데 이 같은 ‘소극적 부정행위자’들이 저지른 범죄의 피해 규모가 극소수의 적극적 범죄자들로 인한 피해보다 훨씬 크다면?

미국 듀크대 심리학 및 행동경제학 교수로 베스트셀러 ‘상식 밖의 경제학’을 쓴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이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지 분석한다.

그는 ‘경제 주체는 합리적 존재’라는 경제학의 기본 전제를 반박하고 “인간은 비합리적이지만 그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 신간에서도 기발한 실험들을 바탕으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실증적으로 설명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는 인간이 부정행위를 할 때 선악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자신에게 닥칠 비용과 편익을 합리적으로 따진 뒤 범죄에 나선다고 했다. 하지만 저자는 경제적 동기를 강조하는 베커의 ‘비용편익분석’에 반박하며, 현실에서 부정행위는 개인의 ‘퍼지 요인(fudge factor)’으로 인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퍼지 요인에 따라, 즉 스스로의 자아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는 기준선 안에서 부정행위로 이득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 따라서 퍼지 요인을 줄인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부정행위가 줄어들 것이다. 저자는 유혹의 순간에 십계명을 외거나 공무원이 윤리적 서약을 하는 것처럼 도덕적 규범을 상기하면 퍼지 요인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는 현금보다는 토큰이나 연필처럼 화폐적 특성이 적거나 자신과 떨어져 있는 대상일수록 사람들의 도덕적 기준이 무뎌지는 경향이 있다는 실험 결과도 흥미롭다. 화이트칼라 범죄가 만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적 이익과 공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우 그 원인은 금전적 유혹만은 아니다. 태생적으로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도움이나 선물을 받으면 빚을 졌다는 생각에 보답하려는 심리가 있다. 또 부정행위는 전염성이 있어서, 주위 사람들이 부정행위를 저지를 경우 자신도 부정행위에 관대해진다.

다이어트 도중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감자튀김 한 조각을 먹을 경우 그날은 다이어트가 물 건너간 셈이 된다.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시도 과정에서 자신이 정한 기준을 한 번 깰 경우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며 더는 자기 행동을 통제하지 않고 시도 전체를 포기한다. 범죄의 영역에서 보자면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원리다. 따라서 초기 단계의 범죄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단 한 차례의 부정행위도 관용적으로 넘어가선 안 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책을 읽는 내내 뇌물 수수로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키는 고위관료와 정치인들이 꼭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맴돈다. 로마제국 전성기의 교훈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면서. 당시 전쟁에서 이긴 장군은 로마 거리를 행진하며 전리품을 자랑하고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는데, 이때 노예 한 명이 하루 종일 장군을 따라다니며 귀에 ‘메멘토 모리(당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라고 속삭였다. 승리에 도취한 장군이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했던 것. 저자는 ‘메멘토 모리’를 ‘당신도 잘못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로 바꿔 해석하길 제안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건 인간의 도덕적 약점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인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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