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향신료가 정력제? 욕망 덩어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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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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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스-향신료에 매혹된 사람들이 만든 욕망의 역사/잭 터너 지음·정서진 옮김
592쪽·2만5000원·따비

15세기 초 동방 여행가들의 기록인 ‘세계의 불가사의에 관한 책’에 나오는 상상도. 후추를 수확해서 왕에게 진상하는 장면이다. 따비 제공
15세기 초 동방 여행가들의 기록인 ‘세계의 불가사의에 관한 책’에 나오는 상상도. 후추를 수확해서 왕에게 진상하는 장면이다. 따비 제공
“그곳은 기쁨으로 가득한 과수원이다. 스파이스의 온갖 달콤한 향이 그득한.”

1325년경 노섬브리아에서 쓰인 시 ‘세상의 운행’에 묘사된 파라다이스(낙원)의 모습이다. 스파이스(spice)는 향신료(독특한 향과 매운맛을 내는 식재료)나 향료(향수나 종교의식에 사용하는 향의 원료)로 번역된다. 그런데 인간이 꿈꾸는 파라다이스에 가득한 게 고작 후추, 클로브(정향), 시나몬 따위였다고?

지금이야 스파이스가 널리고 널렸지만 고대부터 18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스파이스는 희귀하고 값비싼, 인간의 욕망덩어리였다. 신대륙 발견의 촉매제이자 세계 재편의 계기가 된 것도 스파이스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바스쿠 다 가마,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거친 바다를 무릅쓰고 탐험에 나섰던 큰 이유도 향신료 산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16, 17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영국과 네덜란드가 아시아를 놓고 다툰 전쟁은 ‘향신료 전쟁’으로 불린다. 이들은 향신료를 확보하기 위해 아시아로 향했던 것이다.

스파이스는 그들에게 왜 그토록 매력적이었을까.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 인간이 스파이스에 빠진 욕망의 역사를 써 나갔다. 스파이스를 매개로 한 고대부터 중세, 근대를 넘나드는 역사여행이라 할 만하다. 우리에겐 낯선 너트메그(육두구), 메이스 등 이국적인 향신료들이 역사여행에 낭만적 정취를 더한다.

스파이스의 원산지는 주로 아시아이며, 향신료 무역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유럽인에게 스파이스는 희귀한, 즉 가치 있고 비싼 것이었고 머나먼 이국에의 열망까지 불러일으켰다. 음식을 먹는 목적이 주로 영양공급에만 있던 시절 향신료는 허영을 나타내는 사치품으로 취급됐다. 고대 로마의 키케로는 “최고의 향신료는 허기”라며 향신료로 입맛을 돋우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향신료의 짜릿한 자극은 사람들의 입맛과 과시욕을 사로잡았다.

향신료는 치료제와 최음제로도 인기였다. 11세기 아프리카 북부 카르타고 출신인 콘스탄티누스의 치료법에는 늘 향신료가 등장했다. 그는 발기부전에는 생강, 후추, 갈랑갈, 시나몬과 여러 허브로 만든 미약을 점심과 저녁 식사 이후 조금씩 복용하라고 권장했다. 아침 발기에는 우유에 담근 클로브를 추천했다. 그러나 저자는 향신료에 생리학적으로 정력 증진 효과가 있다기보다 인간의 믿음에 따른 일종의 위약효과를 낸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설탕 차 커피 초콜릿 등 자극성 기호식품이 보급되고, 요리에 감자 호박 토마토 피망 등 다양한 채소가 쓰이면서 향신료는 점차 무역상과 대중의 주 관심사에서 밀려났다. 향신료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향신료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가치와 신비함을 퇴색시켰다. 고풍스러운 디자인은 이 책에 절로 손길이 가게 만든다. 대항해시대를 연상시키는 고지도가 찍힌 표지에 두꺼운 양장본으로 꾸며졌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전자책에선 느낄 수 없는 손맛이 그만이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책의 향기#인문사회#역사#스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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