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박천호]도시, 식물 기르기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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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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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호 고려대 생명과학대 교수
박천호 고려대 생명과학대 교수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23일 시행됐다. 국가가 취미로서의 식물 기르기를 관장하고 지원하는 큰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도시농업’에서 ‘업(業)’이라는 영리 추구를 의미하는 단어가 사용돼 일반인은 다소 의아해할 수 있겠으나 법률의 주요 목적은 취미로서의 식물 기르기다. 식물 기르기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동떨어져 왔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듯 영국이나 미국, 일본의 여가활동 10위권 내에 들어 있는 식물 기르기(가드닝)가 한국의 여가활동 조사(2008년)에선 100가지 항목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과 이에 따른 이농(離農), 그리고 전셋집을 전전하며 자주 이사를 해야 했던 도시민의 삶이 주요 원인이다. 또한 주택난의 대안으로 등장한 아파트 주거문화로 흙과는 더욱 멀어지게 됐던 것이다.

흙은 사실 60년대 이농 이전에 시골에서 태어난 세대에게는 친근하지만 애증의 대상이었다. 생활과 밀접했던 흙이 산업화 과정에서 생활의 근간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도시민들에게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90년대부터 스티로폼 박스에라도 채소를 심는 ‘궁상’은 그리 탓할 것이 못 된다. 삭막한 도심과 팍팍한 도시생활로 인간으로서 흙과의 교류가 차단된 것에 대한 대안이 달리 없었지 않았는가!

흔히 인간의 문명은 동물의 수렵에서 목축으로, 식물의 채집에서 재배로 전환되면서 발달했다고 한다. 우리가 식물이란 생명체를 기르면서 그 대상과 교감하고 느끼는 것은 아주 당연한 생활인 것이다. 따라서 식물 기르기란 문명사회에서 인간의 고유한 본성에 내재된 본능 또는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영어 단어 culture에는 문화라는 뜻과 함께 ‘재배’라는 뜻이 있는 것이 이런 관계를 알려준다.

식물 기르기를 치유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원예치료(horticultural therapy)라고 해 서구나 일본에서는 널리 이용되고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식물 기르기는 정신, 심리나 인간관계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어린이들의 상상력이나 관찰력 배양에 도움을 줘 학습 능률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채소를 기를 경우 청정하고 영양가 손실이 적은 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 도시농원의 중심 작물은 채소이지만 사이사이에 꽃을 심어 예쁘게 가꾸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주말농장이나 텃밭에 가보면 이상하리만치 꽃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그곳에는 꽃을 심으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도시농업의 활성화를 위해 화단에 채소만 심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식용이라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식물 기르기뿐만 아니라 미적 만족이라는 추상적인 목적으로 기르는 꽃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길 바란다. 취미로써 식물 기르기가 ‘부식 조달’로만 취급된다면 도시에서 식물 기르기의 본래 의미가 마치 대안농업이나 귀농의 전 단계 정도로 여겨져 취미나 여가생활의 일환으로 정착되는 데 방해가 되기 쉽다. 도시농업에서 꽃식물의 의미는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공장이 아닌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좀 더 추상적인 차원에서 교감하고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는 친구로서 발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자, 이제 도시에서 식물 기르기를 시작해보자. 이번 기회를 통해 가로변이나 아파트 단지 등 도시 내에서 담당자에 의해 식물이 관리되고 우리는 단지 관찰자에 불과했던 단절을 ‘기르기’라는 관계를 통해 발전시켜 보자. 이 법률이 알차게 준비되고 시행돼 우리 여가활동 조사에서 ‘가드닝’이 의미 있는 순위로 자리매김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박천호 고려대 생명과학대 교수
#도시농업#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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