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내 딸아… “이제는 용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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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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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쉬쉬팝의 연극 ‘유서’ ★★★★☆

독일 극단 쉬쉬팝의 ‘유서’는 비디오카메라와 영사기 등 다양한 디지털 장치를 사용해 참신하면서도 메시지 전달이 효과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페스티벌 봄 제공
독일 극단 쉬쉬팝의 ‘유서’는 비디오카메라와 영사기 등 다양한 디지털 장치를 사용해 참신하면서도 메시지 전달이 효과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페스티벌 봄 제공
셰익스피어 ‘리어왕’을 이 시대 노인과 젊은이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페스티벌 봄 초청작으로 13, 14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공연한 독일 극단 쉬쉬팝의 ‘유서’는 이를 참신하고 감동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3명의 여배우와 1명의 남자배우가 한 명씩 등장해 관객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소개하고 “폐하께서 나오십니다”라며 무대로 불러내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무대에 등장하는 세 명의 리어왕은 젊은 배우들의, 칠순 안팎의 실제 아버지들이다.

쉬쉬팝은 이들이 ‘리어왕’을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나눈 토론과 논쟁을 가미해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퍼포먼스 같기도 한 공연을 펼쳤다. 원작 희곡의 내용과 부모자식 간 현실이 무대 위에서 뒤엉키며 진한 웃음과 눈물을 끌어냈다.

자식들은 리어왕의 두 딸처럼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최대한 많이 상속받으려 입 발린 말을 하고 자기 몫을 더 요구하기도 한다. 미혼인 남자 배우는 결혼해 자식을 낳은 다른 형제자매와 유산을 나눌 때,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의 자녀인) 손자손녀들에게 쓴 시간까지 환산해 자기 몫으로 유산을 더 주어야 한다고 주장해 쓴 웃음을 자아냈다.

원작에 대한 두 세대의 토론은 참신한 해석으로 이어졌다. 리어왕이 데리고 다니는 100명의 병사 또는 시종에 대해 한 아버지가 ‘모든 것을 포기한 리어왕이 자신을 보호할 외투,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고 해석하는 장면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누구나 겪는 부모의 노화(老化), 그에 따른 가정에서의 ‘권력’의 상실과 자식의 보살핌 없이는 자존감을 유지할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늙은 부모를 보살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한 여배우가 목록을 읽어갈 때가 그렇다. “계속 반복되는 옛날이야기를 듣고도 웃는다”부터 “아스파라거스를 흐물흐물할 정도로 요리한다” “아버지의 젖은 이부자리를 아침에 갈아놓는다” “주사기를 이용해 음식을 먹여드린다”로 나아간다.

세대간 어쩔 수 없는 큰 벽도 드러난다. 젊은 배우들은 아버지들의 반대에도 그들의 늙고 초라한 몸을 노출시키고 옷을 빼앗아 입으며 ‘세대교체’의 무자비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리어왕은 자신이 내친 효녀 막내딸 코넬리어스를 눈물로 재회하듯 세대간 화해를 모색한다. 바로 용서를 통해서다. 마지막에 전 출연진이 그동안 살아가면서 상처받았던 일들을 시시콜콜히 나열하며 “당신을 용서합니다”는 대사를 반복할 때 그 어떤 연극 못지않은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쉬쉬팝#리어왕#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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