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주흠]아웅산 수치 여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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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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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흠 전 미얀마 대사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이주흠 전 미얀마 대사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미얀마(버마)의 역사가 움직였다. 1일 실시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당선됐기 때문이다.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는 상·하원 43개 선거구와 지역의회 2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보궐선거의 집계를 마친 40개 선거구에서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후보가 모두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1990년 총선에서 압승해 집권을 눈앞에 두었으나 군부가 무효라고 해 좌절하고 자택에 갇혀 살아온 그녀가 생애 처음으로 제도권 정치에 몸을 담게 된 것이다.

자택서 제도권 정치로 진출

작년 3월 군 출신 테인 세인 대통령이 이끄는 민간정부가 국회에서의 간접선거를 거쳐 출범한 후 정치범을 석방하고 언론과 노조에 대한 통제를 완화한 데 이어 이번에 자유선거까지 치르면서 ‘미얀마의 봄’에 대한 기대가 높다. 명분이 생기기를 기다린 서방세계가 곧 제재를 풀면 자원이 풍부하고 농업의 잠재력이 큰 미얀마 경제가 도약의 기회를 얻을 것이다. 이 모두는 기대하지 않았던 지도자의 개혁성, 어렵게 개혁을 용인한 군부의 신축성, 투쟁 일변도를 벗어나 목표에 이르는 과정으로 타협을 택한 수치 여사의 유연성, 그리고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가 보조를 맞춰 압박한 일관성이 어우러져 이룩한 괄목할 만한 성과다.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기정사실을 쌓아올려 이룬 이런 식의 변화는 갑자기 없었던 일로 하거나 물리기가 어렵다. 늘 유전하는 역사가 그렇게 증언한다. 그러나 체제의 틀 속에서 이루어진 변화인 만큼 종착점에 이르는 길이 먼 것 또한 사실이다. 상·하원 전체 664석 가운데 군부에 할당된 25%까지 합치면 체제를 편드는 세력이 90%를 넘어 산술적으로는 이번 선거 결과가 정치 판도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 상징적인 의미가 클 뿐이다.

수치 여사가 민주화를 진전시키려면 정권과 끌고 당기면서 그 뒤에 버티고 있는 군부와의 공존도 모색해야 한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최고사령관은 창군 기념식에서 “군의 정치적 역할은 계속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인 대통령이 장막 뒤로 물러난 독재자 탄 슈웨에게 “당신을 위한 약간의 민주화”라고 설득했다는 전언도 있다. 다른 걱정거리도 있다. 1962년 군이 처음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의 명분이던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도 여전하다.

미얀마에서 군은 유일한 엘리트 집단이다. 군부의 강권통치가 반세기 동안 이어지면서 문민 엘리트는 설 땅을 빼앗기고 실체를 잃었다. 수치 여사를 도와 기득권의 철옹성을 깨뜨리고 군을 대신해 집권할 세력이 형성돼 있지 않은 것이다. 미얀마가 개혁, 개방, 민주화로 향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동안의 성과가 아래로부터 분출된 국민적 에너지의 산물이 아니라 위에서 주어진 성격이라는 사실도 이것을 뒷받침한다. ‘미얀마의 봄’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낙관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미얀마 개혁-개방 대세 못막아

수치 여사로서는 4년 후 총선이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치러지고 여기에서 승리해 집권하는 것이 꿈일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정치는 가능한 것을 찾는 기술’이라는 교훈에 충실함으로써 비로소 이룰 수 있는 꿈일지 모른다. 자칫 공허해지기 쉬운 민주주의만큼 민생도 생각해 무엇을 어떻게 배고픈 국민에게 나눠줄 것인지를 고민한 끝의 꿈이라야 성공한다. 그러기 위해 그녀에게는 현실에 발을 딛고 어느 쪽도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도록 때로는 나서고 때로는 물러서며 필요한 만큼 돌아서 목표에 이르려는 긴 호흡의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분명히 ‘미얀마의 겨울’은 이미 지나고 있지만 ‘미얀마의 봄’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기 때문이다.

이주흠 전 미얀마 대사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미얀마#아웅산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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