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원목]한미 FTA ISD 재협상의 해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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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사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도 불구하고 FTA 폐기 논쟁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반(反)FTA 진영이 최대 독소조항으로 지적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재검토하기 위한 전문가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원점에서 재검토해 문제점이 드러나면 미국에 개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위원회는 FTA 찬반 진영이 각각 보수와 진보 이념에 입각한 공방을 전개하는 자리가 아니다. 현 제도가 투자자 보호와 정부의 정당한 공공규제 권한 확보라는 두 가치를 얼마나 균형 있게 추구하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이다. 철저하게 전문적인 검증만이 남았다. 정부도 방어적 태도를 버리고, 조금이라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사항은 미국과 협상을 통해 개정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제소남용 줄일 대안제시 필요

미국의 거대 투자기업에 의한 제소 남용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를 줄일 수 있는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한미 FTA는 이미 제소 전 협의 규정을 마련했으며, 제3자에게 중재를 요청할 수도 있다. 이런 절차를 활성화해 무분별한 제소를 미리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투자기업이 국내 사법제도를 건너뛰어 국제중재로 제기하는 방식이 문제라면 국내 소송을 먼저 거친 후 중재로 이행하도록 변경할 수도 있다. 선진국 간의 투자분쟁에서는 굳이 국내소송제도를 건너뛸 필요는 없다. 국내 사법제도가 공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기에 투자자의 권리구제는 대부분 국내 재판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사법주권을 보호하고, 단심으로 이루어지는 국제중재 판정의 오류 가능성도 줄이게 된다. 번거롭게 국제 상소기구를 설치해 ISD를 복심제로 수정할 필요가 없게 되는 셈이다.

또 다른 장점은 국내법 클레임과 국제법 클레임을 단일한 소송 절차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분쟁에는 FTA 위반뿐만 아니라 국내 법규 위반 클레임이 함께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다. 투자기업 입장에서 이를 국내 소송과 국제중재로 나눠 진행하는 것은 불편하다. 또한 국내 소송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ISD 중재 제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결국 국내 소송을 포기하고 ISD 제소를 하는 사태가 초래되기도 한다.

국내 소송을 사전에 의무적으로 거치도록 한다면 국내 법원이 국내법 위반과 조약 위반 문제를 한꺼번에 심의해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설령 국내 소송 절차를 거친 후 국제중재로 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중재판정부가 국내 재판 과정의 자료와 판결 내용을 참고할 수 있어 중재 판정의 안정성과 질을 높일 수 있다. 천문학적인 배상금 판정이 나와 정부 정책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면 배상금액의 상한선을 명시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는 환경 관련 분쟁에서 정부가 패소하면 집행과징금을 부과하는데, 그 액수를 최근 상품교역액의 0.007% 이하로 제한한 예가 있다.

사전에 국내소송의무화 거치게

국민도 이젠 막연한 독소조항 주장이나 NAFTA 초기 판례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근거로 한 괴담 수준의 비판에는 등을 돌려야 한다. ISD는 정부의 투자 규제 재량권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남용 가능성이 적게나마 있음에도 투자 유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투자분쟁을 불필요하게 정치문제화하지 않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앞으로 얼마나 그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려 우리 경제가 유럽과 미주를 잇는 교역과 투자의 허브가 되도록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가에 국민적 평가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무역 1조 달러의 신화를 달성한 국가의 국민이라면 말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미FTA#ISD재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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