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낙인]법관 비난에 단호히 대처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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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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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한국법학교수회장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한국법학교수회장
양승태 대법원장이 새해 시무식에서 법관들에게는 진중한 자세를 당부하는 한편으로 법관에 대한 원색적 비판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양곤마에 처한 사법부 수장의 아픈 현실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사법부도 권력에 굴종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의 상흔이었기에 ‘민주화의 화신’ 고 김근태 고문도 법관을 탓하지는 않았다.

일부 법관의 품격 잃은 행태 유감

그런데 최근 법원을 둘러싼 분란의 상당 부분은 자업자득인 측면이 많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논쟁으로 증폭된 일부 법관의 품격 잃은 어설픈 행태는 사회적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들의 도에 넘친 언행이 야기한 불행의 씨앗은 법정에서 피고인이 재판장의 제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막말로 달려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인사들이 재판정에서 보여준 항의소동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더 심각한 것은 법원의 판결에 대한 도전이다.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해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법원이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는 거친 비판이 난무한다. 심지어 주심 대법관에 대한 신상 털기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또한 새로운 양상이다. 종래 형사사법의 두 축인 법원과 검찰의 작동 과정에서 검찰이 정치검찰이라는 비난은 난무했어도 재판에 대해서만은 수긍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최근 양상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만 주창하는 과정에서 사법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

선출된 권력이 아닌 임명된 권력의 생명은 주권자의 신뢰로부터 비롯된다. 사실 사법부는 예로부터 다른 어느 조직보다 많은 특혜를 누려 왔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법관에 임명되는 순간 중앙부처 국장급 예우를 받는다.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면 국가로부터 승용차와 운전사를 배정받는 차관급 예우를 받는다. 고등법원에는 법원장, 수석부장판사, 부장판사 모두가 차관급 예우를 받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법관직의 특수성에 비춰 최고급 예우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예우에 걸맞은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부족했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법관으로서의 책무와 자연인으로서의 권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법원 내부 통신망은 일반인이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법원 내부의 공론의 장이다. 이는 법원의 공식적인 홈페이지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예외일 수는 없다. 트위터를 통한 의사소통은 함께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다면 대화라는 점에서 이를 순전히 사적인 내밀한 영역으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생활로 볼 수는 없다. SNS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공론의 장으로 인식해야 한다.

법관과 자연인의 권리 혼동 말아야

이번 사태를 기화로 우리 사회에서 최고도의 지적 훈련을 받은 인텔리 집단인 법관들이 새롭게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일부 법관의 일탈된 행동에 대해 전체 법관을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직업과 달리 법관은 각자 독립된 재판관이기에 단 한 명의 법관도 법관으로서의 독립을 스스로 훼손한다면 이는 바로 그 법관이 담당하는 재판에 직접적인 위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우리 헌법도 법관의 엄격한 신분 보장을 통한 인적 독립과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른 재판’을 통한 법관의 물적 독립을 보장한다. 그런데 법관들이 혜택만 누리고 헌법, 법률, 법관윤리강령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이미 법관으로서의 품격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법부와 법관이 국민적 신뢰를 잃으면 결국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사법부의 조용한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 외부 압력이나 비판에는 좀 더 겸허하고, 내부에는 좀 더 엄격해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한국법학교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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