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사람냄새 넘치는 이슬람 여인들, 그네들과 사랑에 빠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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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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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 교수(오른쪽)는 “많은 이슬람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다”고 전했다.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가 좋은 데다 한국이 식민지를 개척해 발전하지 않았고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슬람 여성들은 한국인이 예쁘고 멋지며 끼가 넘친다고 말한다”며 ‘웃는 달’이란 이름처럼 환하게 웃었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현경 교수(오른쪽)는 “많은 이슬람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다”고 전했다.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가 좋은 데다 한국이 식민지를 개척해 발전하지 않았고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슬람 여성들은 한국인이 예쁘고 멋지며 끼가 넘친다고 말한다”며 ‘웃는 달’이란 이름처럼 환하게 웃었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이슬람과 사랑에 빠졌어요. 심지가 굳으면서도 사람 냄새 넘치는 이슬람 여성들과요.”

12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학자 겸 여성학자, 현경 미국 유니언신학대 교수(55)는 시종일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귈렌아이, ‘웃는 달’이라는 뜻인 그의 터키 이름이 떠올랐다.

“터키에서 이슬람 최고의 시성(詩聖)으로 꼽히는 루미(1207∼1273)의 22대 손녀 에신 첼라비를 만났어요. 이슬람 여성을 만나러 온 제게 첼라비는 ‘귈렌아이’라는 터키 이름을 지어주고는 가족으로 맞아들였죠. 제가 어느 종교를 믿는 사람인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현경 교수는 2006년 9월부터 2007년 8월 말까지 1년 동안 이슬람 17개국을 순례하고 돌아왔다. 선교사들처럼 그들의 종교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종교를 마음으로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 여정에서 여성 200여 명을 만났고, 이를 600쪽에 달하는 책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신학자 현경이 이슬람 순례를 통해 얻은 99가지 지혜’(웅진 지식하우스)로 묶어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의 ‘이슬람 죽이기’는 갈수록 심각해졌어요. 이슬람을 악마로 규정할 정도였죠. 남성은 잠재적 테러리스트였고, 여성은 가부장적 종교의 희생자로 비췄어요. ‘과연 그럴까. 이슬람이라는 말 자체가 ‘평화’를 뜻한다고 하던데’ 싶었어요. 신학자로서 이슬람 사람들이 말하는 이슬람을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죠.”

현경 교수는 이번 순례길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왕가리 마타이,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파티마 메르니시, 파키스탄 여성 인권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무크타르 마이 등 지식인 여성부터 못 배우고 가난한 여성까지를 두루 만났다. 직접 만난 그들은 ‘원피스 우먼’이었다. 그가 말하는 원피스는 생각과 감정, 몸이 하나로 통합된다는 뜻의 ‘One Piece’이기도 하고, 하나의 평화를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뜻의 ‘One Peace’이기도 하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할리페’(존재의 이유)를 위해 열정적으로 살고 있었다.

“이슬람 여성들은 자신이 서구 여성들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꾸란에는 여성이 재산을 가질 권리는 물론이고 본인의 의지로 결혼할 권리와 이혼할 권리까지 적시해 놓았죠. 심지어 남편이 성적으로 만족시켜 주지 않으면 ‘바꿀’ 수 있는 권리까지 보장돼 있어요(웃음).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에게 꾸란을 내세우면 대부분 아내에게 유리하다고 할 정도죠.”

서구 사회에서 수없이 왜곡 과장돼온 개념인 ‘일부다처제’에 대해서도 현경 교수는 “나름의 합리성을 갖춘 제도”라고 강조했다. 우선 일부다처제가 생기게 된 배경은 수많은 전쟁이었다. 즉, 남편이 전쟁에서 죽어도 다른 남자의 아내, 즉 첩이 아닌 정식 부인이 돼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끔 한, 여성을 배려한 제도라는 것.

“꾸란에는 남편이 모든 아내에게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재산은 물론이고 사랑과 섹스까지도요. 대다수 남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한 명의 아내를 두는 게 좋다고도 적시돼 있죠. 실제로 이슬람 사람들 대부분 일부일처를 이루고 있어요. 여성들은 꾸란을 읽을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자신이 서구나 한국 여성보다 더 좋은 딜(deal)을 하고 있다고 믿죠.”

그러나 그는 “꾸란에 대한 가부장적 해석 때문에 평등과 정의가 여전히 꽃피지 못하는 상황도 여러 차례 경험했다. 특히 못 배우고 가난한 여성일수록 꾸란을 작위적으로 해석한 남성들로부터 엄청난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올해 아랍권의 재스민 혁명 이후 보수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면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이슬람 여성들은 강하고 현명하기에 이런 위기를 잘 헤쳐 가겠지만, 전 세계 모든 여성이 힘을 더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나라는 터키예요. 종교와 정치가 완벽하게 분리돼 있죠. 모든 공식장소에서 여성들은 종교적 의미를 가진 ‘히잡’을 쓸 수 없을 정도예요. 재미있는 건 터키의 젊은 여대생들이 히잡을 쓸 자유를 달라고 데모를 한다는 사실이죠. 모스크는 항상 사람들로 바글거리고요. 반면 신정국가인 이란은 모스크가 텅텅 빌 때가 많죠.”

같은 의미에서 그는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 기독교가 정치적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오늘날 전통적 의미의 종교는 퇴조하고 있어요. 그 대신 영성을 추구하고자 하죠. 어떤 종교를 믿든 명상을 통해 자신을 깨달으면, 자신과 다른 이들도 포용할 수 있어요.”

그는 “종교에도 동시통역이 필요하다. 그것은 나와 같은 여성 신학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며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모든 종교인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에게 도달하는 목소리는 하나입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 현경 교수는…

진보 신학의 명문인 미국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의 아시아계 여성 최초의 종신교수. 기독교 신학과 함께 불교 명상도 가르친다. 여성해방신학자, 환경운동가, 평화운동가 등 그를 표현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으나, 현경 교수는 ‘모든 것을 생생하게 살려낸다’는 의미의 ‘살림이스트’로 불리길 바란다고 말한다. 한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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