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백만기의 컨버세이션’]“좀 삐딱해져도 쇠고랑 안 찹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일 15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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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써먹는 크리에이티브 기술 ⑤탈선법

'범생'은 모범생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사실 이 세상을 무난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범생이 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범생에 대해 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특히 남자들은 범생 같아 보인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으며 여자들도 결혼상대는 범생스러운 공무원 스타일을 선호할지라도 연애상대는 전혀 범생스럽지 않은 스타일을 원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범생은 재미없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J.호이징거는 인간을 호모루덴스 즉 유희적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재미있느냐 재미없느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질문이며 판단기준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재미있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쉬운 것 중에 하나가 안하던 짓을 하는 것이다. 일종의 일탈이고 탈선이다.

밴드 자우림은 노래 '일탈'에서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일상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속 시원한 탈선법을 제시했다.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선보기 하루 전에 홀딱 삭발을
비오는 겨울밤에 벗고 조깅을

일탈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제품에게도 필요하고 브랜드에게도 필요하고 특히나 광고에서는 더욱 더 필요하다.

▶광고는 광고스러우면 광고답지 않다

조금 삐딱하면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네
조금 삐딱하면 손가락질하기 바쁘네

강산에의 노래 '삐딱하게' 처럼 삐딱하게 굴어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기분 좋을 리 없겠지만 광고에서는 좀 삐딱하게 굴어줘야 손가락질 받으며 화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 광고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한다. 무관심은 부정적인 반응보다 나쁘다. 적어도 광고에서는 그렇다.

광고가 광고스러우면 광고답지 않다. 광고야말로 언제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한 변신해야 한다. 광고 크리에이티브가 한마디로 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말 중에 하나가 '다르게 만들기'다.

필자가 몸을 담았던 Lee DDB(현재는 DDB KOREA)의 철학은 'Enemy of Ordinary' 즉 평범함의 적이었다. 첫 출근한 날 책상 위에 놓여있었던 칼 한 자루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칼은 바로 평범함을 베는 칼이었다.

애플을 대표하는 광고캠페인 ‘Think different’.
애플을 대표하는 광고캠페인 ‘Think different’.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의 애플을 대표하는 가장 위대하고 역사적인 광고캠페인이 있다. 캠페인 명은 'Think different'. 이 광고는 형식도 새로웠을 뿐만 아니라 그 광고가 담고 있는 철학 자체가 새로웠다. 잡스는 오직 미치광이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광고에 마치 잡스의 육성 같은 내레이션이 흐른다.

미치광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부적응자들. 반역자들. 말썽꾼들.
네모난 구멍에 들어가려는 둥근 못들.
사물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현상 유지에 관심이 없다.
당신은 그들을 칭찬하거나, 반박하거나, 인용하거나,
불신하거나, 찬양하거나, 비방할 수 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은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들은 발명한다. 그들은 상상한다. 그들은 치료한다.
그들은 탐험한다. 그들은 창조한다. 그들은 영감을 불어넣는다.
그들은 인류를 진전시킨다.
어쩌면 그들은 미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빈 캔버스에서 예술을 보겠는가?
아니면 고요 속에서 한 번도 쓰여진 적이 없는 음악을 듣겠는가?
아니면 붉은 행성을 응시하며 바퀴달린 실험실을 상상하겠는가?

우리는 이들을 위한 도구를 만든다.
다른 이들은 이들을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천재라 부른다.
왜냐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치광이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Think Different

흑백화면으로 조용히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인슈타인, 밥 딜런, 마틴 루터킹, 존 레넌, 에디슨, 마리아 칼라스, 간디, 히치콕, 피카소 등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다.

맨 마지막에 고인이 된 잡스의 모습을 추가 편집한다면 더욱 완벽해질 것 같다. 실제로 이 광고를 만드는 동안 잡스는 카피 한 줄 한 줄에까지 관여했다고 한다.(이 광고를 맡은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들이 겪은 고충이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런지 한편의 광고를 넘어서 마치 잡스의 영혼이 담긴 프리젠테이션같이 느껴진다.

▶범생 공화국으로부터의 탈선

영화 ‘세 얼간이’는 공부기계는 싫다고 외치는 삐딱한 천재들의 반란을 다뤘다.
영화 ‘세 얼간이’는 공부기계는 싫다고 외치는 삐딱한 천재들의 반란을 다뤘다.
발리우드 영화 '세 얼간이'를 보면 공부기계는 싫다고 외치는 삐딱한 천재들의 반란을 볼 수 있다. 인도도 우리나라의 상황과 많이 비슷한가 보다. 대량의 범생을 양산하는 교육시스템 속에서 관습에 도전하고 세상에 반항하며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 꿈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간다는 내용이다.

대학생들이 그 많은 창조적인 직업들을 마다하고 공무원을 장래희망 1순위로 꼽는 범생 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가장 도전적이고 실험적이고 모험을 즐겨야 할 젊은이들이 변화 없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만든 이 사회는 이미 잡스 같은 천재가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걸까.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모든 사람이 피카소가 될 수도 없다. 다만 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보자.

두뇌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도 일상에서 벗어난 일을 해보는 것이라고 한다. 늘 가던 출근길 경로를 바꿔본다든지 좀 멀리 가서 점심을 먹는다든지 왼손으로 마우스를 써본다든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면 악기를 배워본다든지 춤을 배워본다든지 그림을 배워본다든지 마음만 먹으면 방법은 우리 주변에 널렸다.

늘 가던 길로만 가면 늘 보던 풍경 밖에 볼 수 없다. 탈선해야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 가끔은 미치광이도 되고 얼간이도 되어보자. 삐딱하게 살자. 다들 넘 똑바로 산다.

백만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marc@oysterp.com / 블로그 blog.naver.com/bma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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