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생명을 구하는 무기? 광기의 과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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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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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 사이언티스트/토머스 J. 크로웰 지음·이경아 옮김/432쪽·1만9800원·플래닛미디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자신만의 비밀 무기. 이 강력한 유혹은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있었을 것이다. 상대가 동물이면 사냥이었고, 같은 종족이면 전쟁이었다.

무기는 사람을 죽인다. 그래도 내 편이 죽지 않으려면 더 나은 것을 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승리에 대한 결정적 기여는 ‘대량살상’이면서 또한 ‘영웅적 행동’이다. 세상은 이렇게 모순의 그물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무기는 계속 나오고 있다. 이 책이 소개하는, 역사의 흐름을 바꿀 무기를 개발한 25명의 삶이 ‘현재진행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생명에 대한 위협이 더 커진 지금, 무기 개발에 대한 철학적 고민은 더욱 필요하다.

잠수함을 개발한 데이비드 부시넬은 천재였다. 그는 가난 때문에 30대에 예일대를 다녔다. 수학과 과학의 재능이 특히 뛰어났던 그는 대학시절인 1772년 교내 연못에 폭탄을 설치하고 수중에서도 폭탄이 터질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 다음 2년은 폭탄을 전함 밑바닥에 어떻게 설치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곧이어 미국 독립전쟁이 터지면서 잠수 선박 연구는 ‘지적 훈련’이 아닌 ‘무기 개발’이 됐다. 나무를 이어붙이고 타르로 코팅을 한 공 모양의 잠수함은 사람의 힘으로 움직였다. 수중 5m가량 내려가서 1시간에 5km가량 이동할 수 있었다. 1776년 영국 함대가 뉴욕 항을 봉쇄했을 때 작전에 투입됐지만 전함을 폭파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 뒤에도 1787년 부시넬과 토머스 제퍼슨이 잠수함을 만드는 방안을 두고 편지를 주고받는 등 미국은 잠수함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의 잠수함은 처음부터 남다른 무기를 개발하고자 했던 부시넬의 유산인 것이다.

삼각대 위에 설치된 기관총을 작동해 보이는 리처드 개틀링. 그는 오로지 인명 살상용으로개발한 기관총인데도 자신의 발명품이 전쟁 참여 인원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믿었다. 플래닛미디어 제공
삼각대 위에 설치된 기관총을 작동해 보이는 리처드 개틀링. 그는 오로지 인명 살상용으로개발한 기관총인데도 자신의 발명품이 전쟁 참여 인원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믿었다. 플래닛미디어 제공
부시넬과 달리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확고한 신념 아래 신무기를 만들었다. 열렬한 민족주의자였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독가스를 개발해 연합군에 살포한 일을 자랑스러워했다. 연합군 진지를 향해 퍼져가는 최초의 독가스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죽는 날까지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역시 화학자로서 독가스 개발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아내 클라라는 남편이 과학을 악용한 사실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번 개발하면 다이너마이트처럼 산업용과 군사용 양쪽으로 활용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개틀링 기관총처럼 인명을 살상하는 것 외에는 쓸모가 없는 무기도 있다. 오로지 살상용인 무기를 개발하는 사람도 자신의 행위에 명분을 가졌다. 리처드 개틀링은 1분에 400발을 쏠 수 있는 자신의 기관총이 오히려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1877년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발사돼 한 사람이 100사람 몫의 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총기를 만든다면 대군은 필요 없게 될 테고, 그럼 전투와 그에 따른 질병 역시 크게 줄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대량살상무기가 오히려 인명을 구할 것이라는 이런 논리는 지금도 여전히 통용된다. 중성자탄은 기존 핵폭탄에 비해 물리적 파괴력이 적어 도시를 적게 훼손하고 폭발 후에 방사성물질도 남기지 않는 무기다. 새뮤얼 코언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 사진을 보며 파괴력이 덜한 ‘도덕적 무기’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중성자탄을 만들었다. ‘도덕적 무기’라니. 얼마나 모순된 표현인가. 중성자탄은 파괴력이 덜하다는 이유로 정치인들로부터 환영받지도 못했다.

물론 자신의 개발품이 무기로 활용되는 것을 가슴 아파한 개발자도 있다. 러시아 혁명을 피해 망명한 이고리 시코르스키는 자신이 수송을 위해 발명한 헬리콥터가 1960년대에 무기를 갖춘 무장헬기로 변신하자 그 사실을 몹시 힘들어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유족은 그가 모아 둔 수많은 신문 스크랩북을 찾아냈는데 모두 홍수나 화재 등 긴급 상황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헬리콥터에 관한 기사였다. 그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던 것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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