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재동]튀니지 청년 가이드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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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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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국제부 기자
유재동 국제부 기자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시민혁명의 현장을 취재하면서 스물세 살의 튀니지인인 이삼 오피 씨의 도움을 받았다. 물도 음식도 없는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오피 씨는 통역과 섭외, 이동 안내 등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마침내 1일 트리폴리를 떠나는 날, 차로 3시간 반 걸려 리비아 서부 해안 국경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 튀니지 측 검문소 경찰이 우리더러 “비상시에만 쓰게 돼 있는 차로를 이용했다”며 다짜고짜 국경 통과를 막아서는 것 아닌가. ‘비상용’ 표지판 하나 없었는데…. 억지를 부리는 것임에 틀림없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실랑이를 하며 2시간을 보냈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결국 오피 씨에게 20디나르(약 1만6000원)를 쥐여 주며 경찰에게 주라고 했다. 여정 내내 활기에 차 있었던 오피 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두 장의 지폐를 손에 쥔 채 한참을 고민하고 난 뒤 천천히 경찰관에게 걸어갔다.

불과 5분가량 지났을까. 튀니지 경찰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차량을 통과시켰다. 오피 씨는 우리에게 “10디나르를 경찰에게 건넸다”고 말하고 우리에게 남은 10디나르 지폐를 돌려줬다. 그는 이후에도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오피 씨는 자기 나라 경찰의 부패상을 외국인 기자에게 보여주게 된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화가 나 있는 듯 보였다. 이 청년은 원래 자신의 조국이 재스민 혁명의 진원지로서 ‘아랍의 봄’을 이끌었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그는 기자와 동행한 여정 중에도 “재스민은 빨리 지는 꽃이기 때문에 재스민 혁명이란 말은 부적절하다”며 “튀니지 혁명으로 불러 달라”고 말했다. 올 1월 튀니지 시민들이 독재자를 몰아내 중동·북아프리카 민주화 도미노의 선봉에 선 것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그였다. 부패 공무원과 경찰이 여전히 많은 구시대적인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것을 넘어 외국인에게까지 보여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몹시 안타까웠을 것이다.

기자는 “한국도 1987년에야 민주화에 성공했다. 혁명을 이끈 당신 같은 청년들이 있는 한 튀니지 사회도 발전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쉽게 위로받지 못했다. “조국에 실망했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경찰에 돈을 줌으로써 부패 사회에 일조했다”고까지 말했다. 오히려 돈을 건넨 기자가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오피 씨의 부끄러움 속에서 오히려 희망을 발견했다. 파괴보다 더 어려운 재건의 과제를 짊어질 중동 젊은이들이 이렇게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아랍의 봄’은 성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튀니지에서

유재동 국제부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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