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포성 멎었지만… 전기-식수 ‘삶과의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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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폴리에 포연은 그쳤지만 아직 평화는 시작되지 않았다. 반(反)카다피군 청년들이 하루 종일 쏘아대는 ‘자축포’는 도시의 환희와 불안을 동시에 상징하는 듯했다.

트리폴리가 정상적인 도시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폐쇄됐던 시내 3곳의 은행이 29일 다시 문을 열어 돈을 찾으려는 시민들이 건물 앞에 길게 줄을 섰다. 하지만 전기 식수 통신 등 기본 생활서비스가 매우 열악하고 식료품 구하기도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다. 휴대전화 인터넷 텔레비전 전화가 모두 끊겨버리자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택시나 버스 등 대중 교통수단도 눈에 띄지 않았고 음식점과 가게가 문을 닫아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다. 비록 전쟁에서 이겼어도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시내 웬만한 호텔의 객실은 동이 났다. 주민들은 대거 빠져나갔는데 호텔만 붐비는 것은 반군과 외신기자 등 외지인들에게 ‘점거’당했다는 뜻이다. 호텔에서도 찬물만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고 전기 통신도 자주 끊겼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면 순교자광장(옛 녹색광장)에서 AK-47 소총과 대공화기가 발사될 때 나는 불빛이 유일하다.

28일 기자는 가까스로 찾아낸 시내 호텔에 체크인 했지만 방 정리가 전혀 안 돼 있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본래 이곳은 각 지방에서 전투를 하기 위해 올라온 반군이 기숙사처럼 머무는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호텔 주인은 무아마르 카다피의 측근이었다고 한다. 트리폴리가 함락되면서 주인은 달아나고 반군이 건물을 통째로 접수했다. 호텔에서 만난 한 리비아인은 “현재 트리폴리 정부 소유 호텔은 모두 반군 차지”라고 말했다.

반군이 점령한 호텔은 안전한 듯하지만 오히려 정부군의 표적이 되거나 총기사고가 날 수 있어서 위험하다. 실제로 호텔을 드나드는 사람 대부분이 AK-47, M-16 등 소총으로 무장했다. 주머니마다 실탄이 가득했다. 건물 앞에는 중화기도 여러 대 보였다. 호텔 앞에서 만난 10여 명의 반군 청년은 “카다피와 싸우기 위해 미스라타에서 왔다. 트리폴리 시민들이 이 호텔을 우리에게 선물로 줬다”며 무기를 높이 쳐들었다. 이들 중엔 학교를 그만두고 온 15세 소년도 있었다.

28일 낮 시간 동안 간간이 터지던 반군의 축포 소리는 오후 4시 들어 더 잦아지고 격렬해졌다. 호텔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순교자광장에서 벵가지 과도국가위원회(NTC)의 트리폴리 공식 이전을 축하하는 차량들의 행진이 벌어진 것이다.

차에 아무렇게나 올라탄 청년들은 총구를 하늘에 대고 사정없이 총알을 뿜어댔다. 기자의 몸에 손가락 길이만 한 대형 탄피가 정신없이 쏟아질 정도였다. 화약 냄새로 코가 매웠고 고막이 찢어질 듯했다. 오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튀니지 국경지대와 트리폴리를 매일 오가는 반군 무함마드 자루트 씨(33)는 “하늘에 총을 쏘는 세리머니는 자신감이 있을 때에만 한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특히 격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장에 나온 트리폴리 시민들은 청년 노인 여성 어린이 가릴 것 없이 진정 행복한 표정이었다. 총소리가 귓전을 정신없이 때리는 와중에 부르카를 뒤집어 쓴 옴 오웨스 씨(40·여)는 “총소리는 나에게 음악으로 들린다. 영광과 자유를 뜻한다. 혁명이 리비아인을 하나로 만들었다”며 “내 딸도 ‘카다피가 우리 집에 온다면 총을 사서 그를 쏘고 싶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의 두 살배기 아들에게 기자가 카메라를 갖다대자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광장 다른 편에서 만난 아이멘 아흐메드 씨(33)는 “매일 20여 명이 모여 쓰레기를 줍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우리 모두 리비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리폴리=유재동 기자
트리폴리=유재동 기자

이날 트리폴리 시민과 반군들은 외국인인 기자를 귀찮을 정도로 바쁘게 만들었다. 한번이라도 눈만 마주치면 손을 흔들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고,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들은 매우 행복하다” “해방 리비아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해냈다, 우리를 봐 달라, 우리의 미래를 기대해 달라’는 눈빛이 역력했다.

트리폴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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