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양희철]동해 지명,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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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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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한국해양연구원 해양기술정책연구부 선임연구원
양희철 한국해양연구원 해양기술정책연구부 선임연구원
이번엔 동해 지명 표기 문제다. 독도와 이어도 문제에 이어 바다를 둘러싼 충격적 파고가 국민적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84개국이 회원국인 유엔 산하 국제수로기구(IHO)에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동해 명칭에 관한 문제는 IHO에서 다뤄 왔다. IHO는 1929, 1937, 1953년 각각 바다 표기 규정을 채택했고, 현재 ‘해양과 바다의 경계(The Limit of Oceans and Sea)’ 제4판 발간작업을 진행 중이다. 40여 쪽에 불과한 이 책자는 전 세계 해도 편찬을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일본해’가 유일한 국제 명칭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동안 제4판 개정작업이 지연된 이유는 남북한과 일본이 동해 명칭 표기 문제로 번번이 격론을 벌였기 때문이다. 결국 IHO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한 27개국이 참여하는 별도의 실무그룹을 구성해 제4판 발간작업을 추진하도록 했다. 실무그룹은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4월 모나코에서 열리는 IHO 총회에 초안을 제출해 이 문제를 결정할 예정이다. 실무그룹 멤버인 미국의 의견이 다른 회원국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 단지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 것인가가 문제다. 현 단계에서는 동해 명칭을 병기토록 해당 실무그룹 중심의 외교력을 발휘하거나 총회 결정을 연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실무그룹은 참여 전문가 간 비공개 협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어 접근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제3판이 취한 방식을 제안할 수는 있다. 예컨대 1953년 발행된 제3판은 황해를 ‘Yellow Sea(Hwang Hai)’, 동중국해를 ‘Eastern China Sea(Tung Hai)’라는 중국식 발음 표기를 병기하고 있다. 하물며 명칭에 대한 경합이 있는 동해에 ‘East Sea’를 최소한 병기하는 것은 전혀 무리한 주장이 아니다.

장기적 측면에서 바다에 대한 정책 방향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영토와 바다, 이는 감정적 주장으로 유지되고 취득되는 것이 아니다. 동해 지명이 일본이 주장하는 사적 기록보다 오래됐기 때문에 ‘동해’여야 한다는 주장은 일개 회원국의 의견으로 간주될 뿐이다. 사실 우리 정부가 1992년부터 추진한 동해 표기를 위한 외교적 역사적 고증작업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유감스러운 것은 동해 표기 문제를 바라보는 대응이 모두 과거와 현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체계적이고 인내력 있는 연구와 접근이 요구된다. 해양이 장기적 모니터링을 필요로 하는 공간임을 고려하면 우리 것을 지키는 작업이 어디에서 잘못됐는지는 자명하다. 우리 바다를 이해하고 알릴 만한 자료가 많지 않으니 누구를 설득한단 말인가. 결국 동해 표기 문제는 해양과학 연구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정부가 독도 인근 해역에 종합해양과학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고무적이다. 과학기지를 통해 해양과 기상, 어장 예보뿐 아니라 전 지구 기후변화, 해상교통안전 등 다양한 연구 성과가 예상된다. 동해에 대한 주권적 권리와 독도 영유권 수호 문제를 학술적으로 이해시키고, 자생적 파급력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바다는 지키고 관리하되 우리 것임을 공고히 하기 위한 객관적 설득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 영토를 ‘우리 것’이 되도록 만드는 길이다. 동해 지명, 아직 늦지 않았다.

양희철 한국해양연구원 해양기술정책연구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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