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군대문화 그렇게 싫다더니 왜 갑자기 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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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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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삼등병’
연기★★★★ 대본★★★☆ 연출★★★☆ 무대★★★☆

군대의 조직문화에 저항하지만 결국 그 메커니즘의 노예가 되는 젊은 병사를 그린 창작극 ‘삼등병’의 3장. 왼쪽부터 박기언 상병 역의 이현균, 성병삼 이병 역의 박혁민, 윤진원 병장 역의 김태훈 씨. 제12언어스튜디오 제공
군대의 조직문화에 저항하지만 결국 그 메커니즘의 노예가 되는 젊은 병사를 그린 창작극 ‘삼등병’의 3장. 왼쪽부터 박기언 상병 역의 이현균, 성병삼 이병 역의 박혁민, 윤진원 병장 역의 김태훈 씨. 제12언어스튜디오 제공
군대를 안 다녀온 여성 독자를 위해 말하자면 한국 군대엔 삼등병이 없다. 일반 사병의 계급은 이등병(이병)-일등병(일병)-상병-병장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이 연극의 제목은 왜 존재하지 않는 계급을 갖다 쓴 것일까.

연극(성기웅 작·연출)은 3장으로 이뤄진다. 무대는 한결같이 후방부대 야간초소다. 주인공 윤진원(김태훈)이 ‘짬밥’ 먹은 만큼 계급이 올라가는 것만 다르다. 1장에서 대학 연극반 출신의 윤진원 이병은 연극배우 출신으로 제대를 앞둔 조태기(이현균) 병장과 보초를 서다가 이강백의 희곡 ‘파수꾼’을 함께 연기한다. 그러다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듣는다.

“군대 생활이란 건 말이야, 말하자면 한 편의 연극이야. 그래서 한번 이 군대라는 무대에 올라서면 중간에 마음대로 내려갈 수가 없지. 근데 그 연극이 좀 길다. 24개월.”

2장에서 일병이 된 윤진원은 역시 군대에 와서 친구가 된 말년병장 이종문(김성현)과 마지막 보초를 선다. 과묵한 이 병장은 예민한 윤 일병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 이 병장도 말한다.

“군대에서 산다는 거, 꼭 무슨 연극 같아. 그래서 한번 이 무대에 올라서면 중간에 마음대로 내려갈 수가 없지. 문제는 그 연극이 너무 길다는 거야. …너도 상병이 되고, 병장이 되고 그러면서 모든 게 조금씩은 나아질 거야. 그게 여기의 룰이거든. 이 연극의 룰.”

3장에선 말년병장이 된 윤진원이 이번엔 부하인 박기언 상병(이현균)과 마지막 보초를 선다. 이번엔 윤 병장 차례다. “군 생활이란 건 말이야, 꼭 무슨 연극 같아. 그래서 한번 이 무대에 올라서면 중간에 내려갈 수가 없지. 암구호도 무슨 대사 같아. 하루 두 개씩 매일매일 바뀌는 대사.”

비슷한 대사가 반복되지만 조금씩 뉘앙스가 다르다. 첫 대사에 격려가 담겼다면 두 번째 대사엔 염려가, 세 번째 대사엔 냉소가 담겼다. 그렇다면 병사의 삶을 삼등분해 바라봤다고 삼등병인 것일까.

아니다. 작가의 분신인 윤진원은 모든 사람을 익명적 존재로 등치 또는 순치시켜 버리는 군대문화에 저항한다. 하지만 극한의 순간과 마주치자 그 누구보다 군대문화에 투철한 기계로 변신한다. 그래서 자신을 이등병보다 못한 삼등병으로 조롱한 것이다.

군대라는 시공간을 연극적으로 재해석한 섬세함과 독창성이 돋보인다. 작품 내용을 전체 군대문화로 일반화하기보다는 인간을 기계부품으로 취급하는 현대 조직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젊은 배우들의 땀내 가득한 연기도 뛰어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2만2000∼2만9000원. 02-763-8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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