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선영]뇌연구와 IT 융합의 새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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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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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건강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의 건강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척도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뇌는 불과 1300여 g, 주먹 2배 크기에 지나지 않는 작은 기관이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여러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 대표적인 작용이 정신, 즉 정서와 인지(認知) 기능이다.

정신건강은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극단적인 사례는 자살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데, 주요 원인으로 스트레스나 우울감이 꼽힌다. 게임중독은 75만 명으로 추정되는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고, 각종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하며 과잉행동을 하는 증후군이다. 어린이 5% 이상이 이에 속하는데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학습 장애나 반항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 뇌의 노화는 기억력 감퇴, 치매 등과 같이 인지 기능의 저하를 동반한다. 이로 인한 직간접 비용은 천문학적 수준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 주요 정신장애를 일생 동안 한 번이라도 겪는 사람은 인구의 30%를 넘는다. 이 중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10%도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신건강에 대해 다양한 차원에서 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러 방법 중에서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 최근 뇌 활동을 간단히 측정하고 해석하는 기술에 상당한 발전이 있고, 초보적이나마 정신건강의 향상에 도움이 되는 소프트웨어와 도구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런 기기들은 대부분 IT 인프라와의 연결이 가능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정신상태를 읽어보고, 스마트폰을 통해 대응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이제 투자 의지와 시간문제다.

회사 업무 중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PC에 장착된 기기로 그 정도를 측정한 후 소프트웨어를 통해 긴장을 이완하거나 블루투스로 연결된 기기로 우울감의 엄습을 감지하고 트위터를 이용해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써 정서 상태를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것도 실현 가능하다. 교육전문가가 개발한 특수 소프트웨어를 학교 컴퓨터실로 전송해 산만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미있게 집중력을 향상시키거나 각종 뇌 신호를 정기적으로 측정해 뇌 노화의 진행 정도를 예측하고 그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정신건강 산업은 세계적으로도 태동기에 있는 분야로 미국에서조차 소규모 벤처기업이 주도하는 수준이다. 시장이 요구하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집중 개발하면 우리도 충분히 승부를 겨룰 수 있는 지식기반산업이다. 그러나 건강 분야는 첨단제품일수록 견고한 과학적 증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혹세무민의 엉터리 제품이 시장을 아예 죽일 수도 있다.

이 사업은 고도의 융합적 접근과 체계적인 인체 연구를 필요로 한다. 신경과학과 정신의학, 심리학, 교육학, 소프트웨어, 다양한 공학, 통신을 포함한 IT 분야와 디자인, 애니메이션, 게임 등 수많은 분야 간의 협동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개발된 제품의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대규모 인체 연구가 필수적이다. 중소 벤처기업의 자원만으로 이런 것들을 수행하기는 어려우므로 정부가 불을 붙이고 전문가들의 역량을 모아 줘야 한다.

정신은 21세기 행복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대한민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IT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다. 올바른 융합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갖출 수 있다면 향후 생길 거대한 신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주도권을 잡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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