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軍馬의 눈으로 본 1차대전 참상 극사실 ‘말 연기’엔 더이상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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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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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현지서 본 화제의 연극‘워 호스’
연기★★★☆ 말연기★★★★ 연출★★★★ 극본★★★☆

연극 ‘워 호스’의 주인공 조이(오른쪽)와 전쟁터에서 만난 조이의 친구 톱손. 진짜 말의 몸집과 비슷한 크기이기 때문에 무대에서 존재감이 클 뿐만 아니라 미세한 움직임까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국 텔레그래프 홈페이지
연극 ‘워 호스’의 주인공 조이(오른쪽)와 전쟁터에서 만난 조이의 친구 톱손. 진짜 말의 몸집과 비슷한 크기이기 때문에 무대에서 존재감이 클 뿐만 아니라 미세한 움직임까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국 텔레그래프 홈페이지
평일 공연이었지만 시야장애석까지 모두 매진이었다. 8월 공연까지 매진이라 취소 좌석이 없으면 공연을 볼 수 없다. 공연이 임박한 시간이었지만 취소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영국 런던의 뉴런던극장. 화려한 뮤지컬이 가득한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3년째 장기 흥행 중인 연극 ‘워 호스’(연출 톰 모리스, 메리앤 엘리엇)의 공연 장소 풍경이다.

이 작품은 1982년 출간된 동명의 어린이소설을 원작으로 런던 사우스뱅크에서 2007년 초연했고, 성공을 거둬 2009년 웨스트엔드로 진출했다. 올해 4월 미국 브로드웨이로 수출되자마자 토니상 작품상 연출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올해 말 스티븐 스필버그를 감독으로 해서 영화 개봉까지 앞둔 세계적 화제작이다. 이런 지명도 덕택에 티켓 값이 최고 인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19.5∼65파운드)에 육박하는 15∼55파운드에 이르렀다.

줄거리는 단순했다. 영국 데본의 한 시골마을에서 소년 앨버트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란 말 조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마(軍馬·워 호스)로 팔려가 프랑스로 건너간다. 전쟁터에서 만난 군마 톱손과 친구가 된 조이는 함께 프랑스군과 독일군 양쪽 진영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온갖 고생을 겪는다. 조이를 잊지 못한 앨버트는 전쟁에 참전해 조이를 찾아 나선다. 말과 사람 사이의 우정과 전쟁의 참상이 무대에 펼쳐진다.

원작자 마이클 모퍼고는 “아군과 적군을 나누지 않고 말의 시각에서 전쟁이 낳는 고통을 다루려 했다”고 창작 의도를 설명했다. 말이 주인공인 만큼 연극의 설득력은 이 말을 어떻게 연기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이 지점에서 ‘워 호스’는 내공이 그대로 보이는 묵직한 직구로 승부했다. 연극에 등장하는 말은 흔히 상상하는 인형과 달랐다. 극사실주의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모든 관절과 뼈대를 그대로 드러낸 채 최소한의 가죽만 두른 모습이었다. 머리와 가슴, 뒷다리 부분을 세 배우가 나눠 연기하는데 배우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특히 머리를 연기하는 배우는 말 안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말 옆에 서서 머리를 막대로 움직였다. 사람이 위에 타고 달리거나 걷는 것은 물론이고 꼬리와 귀의 움직임까지 섬세하게 표현하고 말발굽 소리나 우는 소리를 고스란히 재현해 냈다. 누구든 살아있는 진짜 말로 느낄 정도로 섬세하고 정확한, 아날로그적 기술 덕분에 말이 느끼는 순간순간의 기쁨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수년간 훈련받은 배우, 말의 움직임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없었다면 택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무대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연극에선 조이가 앨버트를 처음 만나는 말 경매장, 시골 마을, 양쪽 진영을 오가는 전쟁터 장면 등 여러 장소가 등장했다. 실제처럼 무대를 연출하는 대신 세트를 단순화해 배우들이 직접 세트를 들고 움직이면서 빠르게 장면을 전환했다. 전쟁 장면에는 탱크도 등장하는데 역시 말을 움직이는 방식처럼 배우들이 직접 움직여 조종했다.

연극은 휴식시간을 포함해 2시간 반이 넘었다. 그러나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조이가 전쟁터에서 겪는 산전수전을 고스란히 형상화함으로써 전쟁의 고통을 생생하게 펼쳐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 중 절반 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많았다. 단순하지만 보편적인 줄거리, 장인의 경지에 다다른 배우들의 말 움직임 연기가 합쳐져 낳은 감동이었다.

런던=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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