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희섭]기초과학연구원이 풀어야 할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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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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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소 소장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소 소장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을 포함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고무된 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큰 종소리다. 본원의 위치 선정 과정에서 과학보다는 정치적 문제가 커진 것은 어쩔 수 없이 정치가 풀어야 할 일이다. 다만 이 사업의 목적이 지역 균형발전에 앞서 국가 미래에 대한 계획에 있다는 대전제 아래 문제가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지난 30여 년 동안 진행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은 경이적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업적은 그동안 줄기차게 과학기술 연구에 예산을 투자해 온 정부와 이에 부응해 열심히 노력해 온 과학기술인들의 합작품이다. 이런 눈부신 발전에 대한 평가는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높게 받고 있는 상태다. 국내에서는 오히려 폄하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예를 들면 그렇게 많은 돈을 쓰고도 아직 노벨과학상을 못 받지 않았느냐 하는 식이다. 실제로 본격적으로 연구비를 투자한 지가 30년에 불과해 노벨상을 기대하기에는 연구의 축적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연구자들로서는 이런 지적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연구환경이 노벨상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회의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노벨상을 받은 연구 결과들은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조금은 조용한 연구로 시작해 상당 기간에 걸쳐 탐구한 결과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유로운 정신으로 연구 주제에 깊이 파고들어 가는 것이 필수 요소다. 현재까지 우리의 연구환경은 과학자들에게 이런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제한된 연구비, 잦은 평가에 의한 간섭, 조급한 산업화의 기대, 논문 수에 대한 집착, 국제적인 연구 상황 변화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융통성의 불허, 그리고 최선을 다한 후의 실패 불인정 등 자유로운 정신과 호기심을 권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많이 있다.

기초과학연구원이 설립돼 위와 같은 연구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을 기대하게 된다. 적어도 기획 내용을 보면 그렇게 믿어진다. 연구업적과 연구능력의 탁월성만을 바탕으로 하는 연구단장 선정, 장기간 충분한 연구비의 투자, 간섭을 배제하고 연구단장에게 일임하는 연구단 운영, 연구 몰입 환경의 조성,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연구업적 평가 등 이런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때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는 독수리 날개를 달 것으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같은 제도는 단일 연구조직으로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이미 검증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과학자들만으로 구성된 연구단 단장들의 조직체’가 형성되는 것이 본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이 조직체는 기초과학연구단들의 수준을 자체 점검하는 역할을 넘어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를 세계 선도 수준으로 이끌 주체가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의 사업 진행 과정에서 염려스러운 점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단 선정과 관련해 기초과학연구원 본원과 대덕 캠퍼스, 경북 캠퍼스, 광주 캠퍼스에 각각 몇 개 식으로 연구단의 숫자를 지역별로 배정하는 것은 본 사업의 첫 번째 철학을 무너뜨릴 염려가 다분히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력, 특히 우수과학자의 수에 제한이 있음을 고려할 때 배정된 숫자 채우기를 위한 연구단 설립이 되면 본 사업은 그 순간 실패의 길로 들어설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정부출연연구소들이 막스플랑크연구소 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려다가 핵심은 빼고 틀만 따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너무나 귀한 기회인 만큼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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