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국 전문가 기고/이우광]<6>대지진 이후 日의 미래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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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 - 경제’ 시스템 개혁 시험대 올라

이우광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이 신흥국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력 수요를 원자력으로 대처하는 ‘원자력 르네상스’를 열어보려던 여명기에 터졌다. ‘원자력 종합기업’으로 거듭나려는 도시바는 2015년까지 원전 38기를 수주해 1조 엔의 매출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어려움이 클 것으로 보인다.

방사성 물질 피해 확산도 크지만 더 심각한 것은 경제활동의 기반을 뒤흔드는 전력 부족 사태이다. 4월 말까지 도쿄전력의 최대 공급능력은 4200만 kW 정도라 하니 한여름 수요 6000만 kW에 32%나 모자란다. 문제는 전력 부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총발전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원전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높게 일고 있기 때문에 기존 원전의 운행과 증설은 어려워졌다. 석유 등으로 전력 공급을 확대한다 하더라도 원유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전체 전력의 77% 정도를 사용하는 제조업의 피해는 막대할 것이다. 이번 사태가 일본 산업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이번 사태와 엔고가 맞물려 일본 제조업의 해외 진출이 가속되면 일본 내 제조 기반은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환율 전문가들은 제각각 엔고 또는 엔저를 예상하고 있다. 피해 복구와 보험금 지불을 위한 엔 수요 확대에다 내심 엔저를 원하지 않는 미국 때문에 엔고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과 일본 경제 침체 및 기업실적 악화로 엔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맞서고 있다. 일본 정부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엔고를 막아야 경제 복구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본 재무성은 엔고보다 엔저나 국채 폭락을 우려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가격이 급등하는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엔저보다는 엔고가 유리하고 막대한 복구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대량 국채 발행이 불가피한데 만약 시장심리가 불안해질 경우 국채 입찰에 미달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다. 따라서 지금 일본 정부는 국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도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복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경우 인플레이션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지금 일본 정부는 위기관리나 경제정책의 운용에서 선택지가 별로 없는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미래는 회의적일까? 나는 오히려 이번 지진이 일본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국민들을 단결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지금까지 일본 경제는 정치적 리더십의 결여,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산업구조, 기술을 과신한 나머지 신흥시장에서 패배하는 기업체질, 일본 국민의 ‘갈라파고스화(化)’(육지로부터 고립돼 고유한 생태계를 이어가는 갈라파고스에 빗대 자국 취향에 맞춰 기술을 발전시키다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는 것을 의미―편집자)를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번 사태로 이러한 개혁들이 한꺼번에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나 외교에도 긍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우선 국제 여론이 호의적이다.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미일 간에 알력도 있었으나 지진 직후 미 해군 제7함대와 일본 자위대가 사상 최대급 공동 작전인 ‘도모다치(친구) 작전’을 전개해 미일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영유권 문제로 일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러시아도 사할린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의 일본 공급을 늘리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급격한 엔고를 막기 위해 선진 7개국(G7)도 10년 만에 엔 매도 협조 개입에 나섰다. 이러한 조치들은 일본의 세계적인 위상이 결코 낮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으로 일본은 부흥 과정을 통해 지진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경제력과 외교력을 갖출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많은 위험요인도 도사리고 있다. 일본 정부가 위기관리에 정신이 팔려 외교적 진공 상태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과 중국에 교과서 문제를 일으켜 지진 이후 일본에 상당히 우호적이었던 감정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이다. 지금 일본은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우광  

■ 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도쿄대 대학원 경제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삼성경제연구소 일본연구실장, 해외연구실장, 일본연구팀장
―저서 ‘일본 재발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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