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연극 ‘칼로 막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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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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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귀족 비극이 코믹 활극으로 비틀고 뒤바꿔 관객과 소통하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속사포 같은 대사와 땀내 나는 액션 풍자극으로 풀어낸 ‘칼로 막베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속사포 같은 대사와 땀내 나는 액션 풍자극으로 풀어낸 ‘칼로 막베스’.
연극의 기초는 말과 몸이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고선웅 씨가 이끄는 극공작소 마방진의 연극은 이 말과 몸을 극한치까지 끌어올린다. 배우들은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속사포처럼 쏘아대면서 고난도의 액션을 함께 소화한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맥베스’를 범죄자들을 격리수용한 미래 도시 조폭 드라마로 둔갑시킨 ‘칼로 막베스’는 그런 마방진 스타일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연극은 원작의 골격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다. 원작에서 맥베스에게 운명의 덫을 놓는 3명의 마녀를 1명의 맹인술사(양영미)로 바꾸고, 권력욕의 화신인 막베스 부인 역으로 여장한 남자배우(이명행)를 등장시키는 정도의 변화만 줬을 뿐이다.

그러나 중세 스코틀랜드를 무대로 어둡고 축축한 인간심리를 그린 원작은 한국 조폭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빠르고 코믹한 액션활극으로 둔갑한다. 중세 서양귀족의 고풍스러운 어휘들은 한국 뒷골목 양아치들의 경쾌한 비속어로 바뀐다. 대부분 목격담이나 후일담으로 묘사되는 전투장면들은 칼 한 자루씩 손에 쥔 조폭들의 아드레날린 넘치는 액션활극으로 변신한다. 그와 함께 통제 불가의 권력욕에 의해 자기파멸로 귀결되는 묵직한 비극이 일상화된 폭력의 악순환을 풍자하는 익살극으로 탈바꿈한다.

배우들은 틈틈이 자신들의 배역을 풍자하며 폭소를 유발한다. 막베스(호산)가 햄릿의 대사를 읊으며 “나는 맥베스가 싫다, (그래서) 막베스다”라고 주장하거나 그의 칼에 맞아 죽는 배우가 “내가 극단 맨 막내만 아니었어도…”라며 분함을 표현하는 식이다. 심지어 관객에게만 들리는 방백 대사 중간에 치고 들어와 “이젠 방백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대사로 웃음을 끌어낸다.

연출가 고선웅 씨는 이렇게 연극성을 극대화하는 스타일 유희를 통해 관객과 유쾌한 소통을 꿈꾼다. 그 전략은 이렇게 요약된다. 익숙한 것(맥베스)은 낯설게 만들고(막베스) 낯선 것(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익숙하게 만드는 것(조폭 코믹액션)이다. 이러한 전략의 성패는 스타일 변화를 준 원작이 얼마나 탄탄한가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창작극에 적용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꾸준히 창작극을 발표해오는 마방진이 풀어내야 할 과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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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 수상작. 3만원. 2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02-3676-7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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