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사람은 많은데 ‘사람다움’은 왜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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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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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 ‘C.U.B.A: 쿠바,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전 - 박혜수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전

박화영 씨의 ‘C.U.B.A:쿠바,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전은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소외되는 작고 여린 존재들의 이야기를 3개의 전시장으로 구성해 보여준다. 비디오 설치작품 속에 등장하는 오브제 중 하나인 만두는 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다른 사람을 상징한다. 사진 제공 성곡미술관
박화영 씨의 ‘C.U.B.A:쿠바,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전은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소외되는 작고 여린 존재들의 이야기를 3개의 전시장으로 구성해 보여준다. 비디오 설치작품 속에 등장하는 오브제 중 하나인 만두는 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다른 사람을 상징한다. 사진 제공 성곡미술관
전시장 바닥에 물이 담긴 올망졸망한 그릇이 줄지어 놓여 있다. 뒤편 스크린에 만두가 등장하더니 하나하나 호명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부드러운 만두, 속 터진 만두, 고소한 만두, 부추만두…. 잠시 웃음 짓는 순간, 만두가 사람을 상징하는 오브제임을 깨닫는다. 만두가 그렇듯 우리 모두는 다르다는 사실을.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박화영 씨(42)의 ‘C.U.B.A: 쿠바,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전(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 2관)은 알쏭달쏭한 제목만큼이나 다채롭고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인다. 제목 속 ‘쿠바’는 소외되고 연약한 존재를 상징하는 말. 일상을 비튼 비디오 오디오 설치작품, 회화, 사진, 오브제, 책이 어우러진 전시장은 작가의 절절한 외침을 전달한다. 어떤 역경에도 우리 안에 잠든 ‘쿠바’를 깨워 다시금 스스로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자기 혁명’에 대한 외침이다. 02-737-7650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짚어보는 또 다른 여성 작가의 전시가 있다. 6∼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미술관(포스코센터 서관 2층)에서 열리는 박혜수 씨(36)의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전. 작가 역시 전시와 상호 보완을 이루는 책을 펴냈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는 조언을 따스한 감성으로 풀어낸 작품과 책이다. 02-3457-1665

○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서

‘가난한 마을 있어요?/재개발 되었습니다/가난한 학교 있어요?/폐교 되었습니다./가난한 교회 있어요?/신축 성전으로 이사갔습니다./가난한 노래 있어요?/잊혀진 지 오래입니다’(박화영의 ‘가난한 노래’)

‘쿠바…’전에서 작가는 물질을 숭배하고 소비가 만능인 사회에서 함부로 취급받는 나약한 존재를 끌어모은 뒤 주체적 의지로 살아가는 방법을 전파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자신과 타인의 흔적이 스민 일상의 물건을 채집해 사람 사이 소통과 유대감을 강조한다. 첫 전시실은 머리카락, 나무토막, 인어인형, 원피스 등이 진열되고 이런 소품들이 등장하는 비디오 설치작품이 자리한다. 2층에는 자동응답전화기에 잘못 남긴 메시지를 작가가 립싱크하는 영상작품 ‘틀린 번호’ 등이, 3층에는 작가가 펴낸 아티스트 북과 ‘쿠바-시집’이 작품과 함께 배치된 거실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이 모든 작품을 통해 작가는 관객을 조용히 설득한다. 남들이 정한 기준에 따르느라 자신의 인생을 놓쳐 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거창하지 않아도 소박한 내 안의 혁명을 선택하라고.

○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

박혜수 씨의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전에 선보일 설치작품 ‘빛으로도 쏘지 마라’. 거친 세상을 향해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작품이다. 작가는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꿈꾸 진정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포스코미술관
박혜수 씨의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전에 선보일 설치작품 ‘빛으로도 쏘지 마라’. 거친 세상을 향해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작품이다. 작가는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꿈꾸 진정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포스코미술관
사람다움을 잃어가는 세상을 안타까워하는 작가. 박혜수 씨의 책과 전시는 신기루를 쫓느라 진정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설치작품 중 긴 총구 끝에 앉아 있는 참새 한 마리의 제목은 ‘빛으로도 쏘지 마라’. 거칠고 폭력적인 세상을 향해 사랑의 소중함을 외치는 작품이다. 시멘트로 만든 여행가방의 경우 가볍게 싼다고 다짐하고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불룩해지는 가방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이 하는 걱정 중 10분의 9는 일어나지 않지만 늘 걱정을 안고 사는 우리네 모습이 담겨 있다. 찻집과 공원에서 수집한 평범한 이들의 대화를 담은 ‘다이얼로그 프로젝트’도 인상적이다. 지금의 모든 희생은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라 굳게 믿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바람과 상처, 욕망’을 생생히 드러낸다. 작품의 씨앗이 되는 작업노트를 모은 책도 울림을 남긴다. 작품처럼 담담하면서도 말간 햇살처럼 정갈한 글이 실려 있다.

보잘것없거나 초라하게 버려진 존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두 작가. 이들의 전시는 약자의 고통을 감싸주면서 우리 내면에 대한 성찰을 일깨우는 점에서 새해를 맞는 마음에 힘을 실어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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