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조명도 캐럴도 없지만… 희망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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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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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전야 연평도 표정

“이땅에 평화를” 연평성당의 크리스마스 24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면 연평성당에서 성탄전야 미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연평도 주민 두 명이 구유(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주는 그릇)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지난달 북한의 포격 도발로 피해를 본 연평도 주민들은 차분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연평도=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이땅에 평화를” 연평성당의 크리스마스 24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면 연평성당에서 성탄전야 미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연평도 주민 두 명이 구유(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주는 그릇)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지난달 북한의 포격 도발로 피해를 본 연평도 주민들은 차분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연평도=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쾌속 여객선이 닿는 ‘당섬나루’ 말고도 연평도에는 어선들이 정박하는 포구가 마을 입구에 있다. 24일 어둠이 깔린 어선 포구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한숨을 깊게 내쉬는 김모 씨(61)를 만났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현지 취재에 나선 지 19일째 되는 날이다. 서성이는 기자를 보고 김 씨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게 우리 배요.” 그의 손가락 끝은 포구에서 가장 큰 배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 씨는 배에 미안하다고 했다. “너무 배를 안 몰아서 바닥에 수초가 많이 붙었어. 그러면 배를 몰아도 속도가 안 나.” 1년에 두 번씩 해 주는 페인트칠을 못했고, 기관 수리를 한 지도 너무 오래됐다는 것. “배도 사람 같아서 돌봐주지 않으면 병이 난다”며 연방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북한의 포격 도발 이후 어둠이 내린 연평도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것은 파도와 바람소리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포격 전까지만 해도 어선포구 앞은 사람 사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한밤중에도 바닷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낚시꾼이 있었고,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온 어부들은 마을 노래방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목청을 돋우었다. 지금은 웃돈을 얹어 준대도 바다에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배를 띄우는 선주들은 최근 배추를 100포기나 절여 김장을 담갔다. 내년 바다에 나갈 선원들이 먹을 김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도시에선 화사한 조명과 크리스마스캐럴이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지만 포격의 회오리가 지나간 연평도에서는 떠들썩한 연말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었다. 그저 ‘차분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연평도의 유일한 성당인 연평성당의 김태헌 신부는 이날 오후 8시 섬에 남은 10여 명의 신자와 군인들과 함께 성탄전야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가 끝나고 컵라면을 끓여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조촐한 ‘생일파티’를 열었다. 연평교회 송중섭 목사(44)도 이날 10여 명의 신자들과 포격 흔적이 남아있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찬송가를 불렀다.

날씨가 조금만 추워져도 얼어붙는 수도관, 편의점 빼고는 가게 문을 연 곳이 없어 양파 한 개, 마늘 한 쪽을 살 수 없는 불편한 생활. 그래도 섬을 지키는 주민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웃의 수도관과 보일러를 대신 점검해 주고 있다. “사격도 끝났으니 이제 동네사람들이 많이 돌아올 거야. 마을도 다시 사람 사는 것 같아지겠지.” 잿더미를 뚫고 다시 일어나려는 연평도 주민들은 체감온도 20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들은 ‘작은 것에 감사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소리 없이 따르고 있었다.

연평도=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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