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혼자 밥 먹는 사람이라면 뭇 시선들과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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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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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식탁/윤고은 지음/398쪽·1만 원·문학과지성사

“몇 분이세요”란 말이 듣기 싫다. 남아도 2인분은 시켜야 한다. 혼자 고깃집 가는 게 싫은 이유가 이뿐이겠는가. 혼자 밥 먹는 건 세상 어떤 상황보다 ‘혼자’임을 실감하게 한다. 윤고은 씨(30)의 첫 소설집 ‘1인용 식탁’의 표제작은 혼자 밥 먹는 사람의 모습을 여자선수 한 명이 여럿을 상대로 싸우는 권투경기에 비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필이면 치고받는 스포츠 경기. 혼자 밥 먹는 사람은 자신을 바라보는 식당 손님들의 시선과 치고받으며 싸워야 한다.

윤 씨의 장점은 공감 백배의 현실을 상상력과 짜깁는 능력이다. 헬스장에 다니는 대신, 요가를 배우는 대신, 이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혼자 먹는 법을 알려주는 학원’에 등록한다는 것. ‘1인용 식탁’은 이름은 오인용이지만 실제로는 일인용으로 지내는 남자의 이 학원 체험기다. 주말보다 평일, 책이나 신문 같은 도구 이용하기, 근사한 레스토랑에 갈 때는 미리 예약하기. 박자처럼 외운 순서대로 음식 먹기. 가령 밥-반찬-국-반찬을 강-약-중강-약으로 외고 순서대로 먹는 것이다.

현실에서 상상력으로 넘어갔던 작가는 이 상상을 다시 현실로 끌어낸다. 오인용은 수료증을 받는 데 실패했다. 왜? 학원을 다니면서 그가 얻었던 것은 혼자 먹는 법에 대한 수련이 아니라 자기 말고도 혼자 먹는 사람이 많다는 위안이었기 때문이다.

단편 ‘로드킬’도 마찬가지. 자판기로 가득한 무인 모텔이라는 배경은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이지만, 인물들이 주고받는 얘기는 익숙하기만 하다. 현실에서 들었을 법한 낯익은 대사들은 윤 씨의 판타지 속에서 적절하게 잘 들어맞는다. “수익성이 없는 자판기는 오래둘 수 없다나? 그래서 퇴출됐어요.” “현실은 대본이 아니라는 걸. 연극은 한 시간 분량이었지만 나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분량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는 걸.” 현실과 상상을 이렇게 한통속으로 만들어놓는 재기를 두고 평론가 이수형 씨는 ‘현실과 상상의 돌려 막기’라고 표현했다. 그 돌려 막기는 비참한 현실을 위무하고자 하지 않는다. 윤 씨의 소설에서 그것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전략이 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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