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의형제’ 장훈 감독의 경쟁력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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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하지 않는 솔직-투박한 감정의 폭발력

폭력을 통해 캐릭터를 구축하고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장훈 감독의 솜씨가 빛나는 영화 ‘의형제’. 사진 제공 쇼박스
폭력을 통해 캐릭터를 구축하고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장훈 감독의 솜씨가 빛나는 영화 ‘의형제’. 사진 제공 쇼박스
‘의형제’의 장훈 감독은 데뷔작인 ‘영화는 영화다’를 포함해 이제 겨우 두 편의 장편을 연출했을 뿐이지만, 무척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대상이다. 김기덕 감독의 연출부와 조감독 출신인 그의 영화는 치밀하고 세련되진 못하지만 그 대신 굉장한 집중력과 생명력을 본능처럼 품고 있다. 의형제가 쉽고 보편적인 듯하면서도 동시에 유니크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영화란 대중예술매체 자체를 유식한 체하지 않고 선입견 없이 바라보는 그의 솔직한 태도 때문인 듯하다. 이런 뜻에서 의형제 속에 담긴 장훈의 예술적 경쟁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몇 개의 키워드로 요약되는 장훈의 경쟁력은 그의 영화를 가치 있게 읽어내는 재미난 실마리가 된다.

①정면승부(正面勝負)=의형제의 시나리오는 거칠고 허점이 많다. 게다가 ‘의형제’란 제목은 장훈의 전작 ‘영화는 영화다’만큼이나 직설적이고 촌스럽다. 바로 이것이 장훈의 영화가 가진 에너지의 실체다. 그의 영화 제목은 늘 ‘소재’인 동시에 ‘주제’다. 이는 그가 에둘러 말하거나 아름답게 포장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단순명료한 이야기를 단순명료하게 풀어내는 그의 영화적 패기와 박진감은 내러티브가 갖는 개연성의 부족을 뒤덮어버릴 만큼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야기를 한 층 한 층 정교하게 쌓아가는 쪽이 아니라, 반대로 이야기를 후다닥 비약시키면서 감정을 확 폭발시켜 버리는 쪽이다.

이야기의 논리력보단 감정의 폭발력을 따라가는 장훈의 스토리텔링은 의형제가 기존 할리우드 ‘버디 무비’(두 명의 파트너가 운명공동체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전형적인 영화)의 문법을 차용하면서도 어느새 그 문법을 지혜롭게 용도 폐기해 버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림자’란 이름의 남파 킬러가 북한 정권의 배신자를 무참히 살해하는 장면을 담은 영화의 시작 부분은 블록버스터의 이른바 ‘5분의 법칙’(영화시작 5분 안에 관객의 이목을 끄는 확실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기대치를 끌어올리고 집중도를 높이는 방식)에 충실한 장치. 하지만 전직 국가정보원 출신의 흥신소 사장 송강호와 버림받은 남파공작원 강동원이 서로의 정체를 숨긴 채 불편한 동거를 계속하다 결국 상대가 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음이 밝혀지게 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대중이 익숙해 있는 기존 장르구조와는 다른, 무척 생소한 ‘놈’이다. 이런 엄청난 비밀이 굉장한 액션을 통해 밝혀지는 게 아니라, 평온하고 나른하기까지 한 추석 차례상 앞에서 송강호가 툭 던지는 짧은 대사 한마디(영화 관람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하여 이 대사를 여기서 밝히진 않겠다)로 허무하게(?) 밝혀지다니…. 관객의 허를 찌르면서 순식간에 비등점을 넘어버리는 감정의 수직상승은 이야기의 정합성이라는 논리적 잣대론 해석하기 힘든 장훈 영화의 강렬한 존재감이다.

②폭력(暴力)=‘영화는 영화다’에 이어 ‘의형제’에서도 두 남자가 등장한다. 두 남자는 데칼코마니처럼 서로 대칭점에 있으면서도 알고 보면 고스란히 포개어지는 거울 같은 존재들이다. 갈등하던 두 남자는 폭력을 통해 충돌하고, 변모하며, 종국에는 화해한다. 이것이 바로 장훈 영화의 폭력이 다른 액션영화들과 다른 지점이다. 의형제 속 폭력은 이야기의 일부로서의 폭력을 지나,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동인(動因)으로서의 폭력이다. 폭력을 통해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짧은 시간 안에 구축하고, 또 등장인물들은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서로 정확히 포개어져 간다. 단출한 폭력을 통해 해학과 살의를 동시에 뿜어내는 장훈의 본능적 솜씨는 근사한 미학이나 스타일부터 욕심을 내는 최근의 신인감독들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대목이다.

익숙한 듯 보이면서도 까놓고 보면 불친절하고 낯선 손님 같은 장훈의 영화예술. 앞으로 장훈의 미래는 둘 중 하나일 공산이 크다. 더욱 놀라운 차기작을 보여주며 자기 진화를 거듭하거나, 아니면 그럴듯한 담론을 구사하며 잘난 체하다가 대중으로부터 따돌림당하는 것 말이다. 나는 물론 장훈이 전자(前者)이기를 바란다. 그가 부디 매끈하고 미학적인 영화를 만들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전히 용감하고 직설적이며 한층 더 무지막지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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