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병종]화성 한옥에서 누린 느긋한 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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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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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자락에 봄맞이 나들이를 했다. 가는 곳은 화성. 그곳을 세거지로 둔 미래상상연구소의 홍사종 대표가 길라잡이로 나섰고 천적 농업의 기수 이원규 회장이 동행했다. 세계적 규모로 들어선다는 유니버설스튜디오 자리와 국제요트대회가 열리는 전곡항을 둘러본 후 유서 깊은 화성의 고택 몇 채를 구경하고, 오는 길에 궁평항 낙조를 보는 일정이었다.

섬돌, 소반, 대청마루, 노송과 매화

화성은 정조의 얼이 깃든 곳이자 그 이름 또한 장자의 화인축성(華人祝聖) 고사에서 따왔다는 일설이 있을 정도로 역사적 내력이 깊은 곳이다. 왕모대와 당항성 등 유적지가 유난히 많은데 이제 최첨단 유니버설스튜디오까지 들어서면 명실공히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문화도시의 면모를 보이게 될 것 같다.

이번에 특히 화성의 오래된 한옥을 둘러보게 된 데는 사연이 없지 않다. 언젠가 남양 홍문의 고택 ‘옥란재’에 관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글이 나간 후 심심치 않게 그곳과 관련된 전화를 받게 됐다. 옥란재와 주변 풍광을 스케치하듯 가볍게 쓴 글에 전화를 몇 통 받고 보니 화첩에 먹도 묻혀가며 제대로 한옥 답사기를 한번 만들어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옥란재에 관한 전화 중에는 그곳에서 1박을 할 수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강아지를 데려가도 좋은지 묻는 내용도 있었다.

다녀온 사람에게 무엇이 좋으냐고 물으면 으레 한옥에서 지낸 하룻밤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장작불을 지핀 따끈한 온돌방에서 도란도란 하룻밤을 지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는 얘기다. 한밤중 마당에 나와서 가족끼리 얼음알갱이처럼 천공에 박힌 별을 헤아리던 추억을 잊을 수 없다는 사연도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무슨무슨 문화재 팻말이 붙은 허다한 명문고택일수록 대개는 옷깃을 여미고 발걸음 소리까지 죽여 가며 가만히 허리 굽혀 안채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정도인 데 비해 그곳은 늘 사람 사는 냄새로 훈훈한 데다 집주인이 4대에 걸쳐 가꾸고 돌보았다는 정원이며 숲이 일품이다. 한낮에 숲에서 날아오르는 살진 꿩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산책로를 느리게 걷는 일도 도시에서 맛보기 어려운 기쁨이었을 것이다.

마산리의 동곡산방(銅谷山房)은 옥란재와 10km 반경에 있는데 옥란재의 홍문과는 외척 관계가 된다. 너르고 펑퍼짐한 뒷산에서 불어와 노송 사이를 쏴아 하고 쓸고 가는 솔바람 소리 속에 의연하게 앉아 있는 옛집은 제대로 지은 한옥의 품새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한옥마을 가꿔 우리 정취 나눴으면

주련의 문장이 범상치 않았거니와 본채의 마루 또한 옛집으로서는 상당히 넓었다. 대청마루가 넓다는 것은 주인이 문사이거나 적어도 문인묵객이나 가객(歌客)들을 즐겨 청할 만큼의 취향이나 재력을 갖추었으리라고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벌족한 문벌을 자랑하며 모여서들 창을 듣거나 시회(詩會)를 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는 단아한 모습의 이재선 옹 앞에 큰절을 올렸다. 섬돌에 신발을 벗고 문향 그윽한 한옥에 들어서자마자 어쩐지 큰절을 올려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세시였던 것이다.

우리가 좌정하고 앉자 정갈하고 오래된 소반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차가 나왔다. 첫눈에 이 옹의 견문과 학식은 당신의 집만큼이나 깊고 그윽해 보였다. 젊은 시절 일본 문예잡지인 문예춘추를 즐겨 읽었다는 옹은 특히 문학과 함께 한일 근대사 쪽에 견문이 깊은 것 같았다. 옹은 관련 문헌과 책자를 여럿 꺼내 왔다. 옛날에 마당엔 수령을 알 수 없는 늙은 매화나무가 있었고 그 매화나무 아래에서 이 옹의 부친께서는 자작 한시를 지어 자녀에게 손가락 짚어가며 일일이 설명을 해 주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그 덕분에 한학은 가학으로 익혔다고 말했다.

80객인 이 옹의 배웅을 받으며 다음 들른 곳은 정용채 가. 초계 정씨 일문의 수백 년 고옥으로 화성시의 민속 문화재로 지정된 집이다. 집의 위용도 위용이려니와 건축양식 또한 독특했다. 본채가 후원과 앞마당을 가로지르며 지어진 데다 곳간과 다실(茶室)인 듯싶은 공간이 본채를 마주 보고 있었다.

한옥을 구경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설핏하다. 정조는 현릉원을 조성하면서 화성을 일러 “800봉우리가 하나의 언덕을 두고 휘돌아 가는 모습이 마치 꽃잎과 같다”고 했다는데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것뿐 아니라 화성은 그 땅 넓이만도 서울의 1.4배에 이를 만큼 넓은 곳이다.

땅이 넓다 보니 다양한 시설이 산재하여 지어졌는데 나는 장차 역사도시 화성에 한옥마을을 조성했으면 하고 바라본다. 그래서 장차 들어설 첨단의 시설물을 찾아올 외국인이 한옥마을에 꼭 들러 우리의 문화전통을 익히게 하였으면 싶다. 한옥마을은 비단 외국인에게뿐 아니라 우리의 후세대에게도 문화와 역사의 좋은 배움터가 되어 줄 것이다. 세시에 역사도시를 돌아보고 느낀 소회의 한 가닥이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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