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넘치는 情… ‘창’너머 추위 녹였다

  • 입력 2008년 12월 29일 02시 58분


우산소년… 12세 가장… 무기수의 신장이식…

《크고 작은 사건 속에는 많은 사람의 애환이 숨겨져 있다. 동아일보 사회면의 ‘창(窓)’은 그러한 사연을 들여다보고 그 애환의 주인공들이 세상과 건강하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코너다. 2008년 ‘창’에는 우리의 사회상과 다양한 세태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

올해 첫 ‘창’은 실종된 경기 안양 초등생 부모들의 애타는 심정을 전하는 안타까운 소식(1월 15일자)으로 시작했다.

당시 실종 3주째였던 혜진이의 어머니 이달순 씨는 성탄절을 앞두고 산 케이크를 뜯지 않고 기다리며 딸이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혜진이와 예슬이는 3월 끝내 주검으로 발견돼 많은 사람을 슬프게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석 달 넘게 이어지며 각종 괴담이 판을 칠 때에 당시의 현실을 보여주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창’에 투영됐다.

‘전경들이 시위대 진압을 거부한다’는 허위 내용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구속된 대학강사 강모 씨(7월 5일자).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극적인 느낌을 주려고 작문을 했을 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중국동포 등 외국인 노동자들의 조각난 ‘코리안 드림’에 얽힌 사연도 많았다.

피살된 형을 찾아 입국한 중국 동포 형제가 장례비와 치료비 1000만 원을 갚지 못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안타까운 사연(9월 12일자)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불황으로 인건비를 아끼려고 직접 배달 나간 택배업체 사장이 교통사고로 숨져 외동딸과의 크리스마스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가슴 아픈 사연(12월 25일자)도 있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로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버려진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다.

‘12세 애어른’ 명제(가명) 군이 정신지체인 형과 동생을 돌보는 사연(9월 12일자),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우산 소년’ 재혁(가명) 군이 비 오는 날 마중 나오다 다친 할머니 때문에 맑은 날에도 우산을 갖고 등교한다는 이야기(12월 22일자)는 반향이 컸다.

죄를 참회한 사람들을 보듬는 따뜻한 사연도 있었다. 사람을 죽였던 과거를 반성하던 무기수 아버지는 만성신부전증에 걸린 아들에게 “용서를 빈다”며 신장을 이식해 줬다(11월 27일자).

또 정신지체인 아들이 노인을 넘어뜨려 중상을 입히는 바람에 보상 문제로 속을 태우던 가난한 어머니가 돈을 보태주며 원만한 중재를 도와준 검사에게 감사편지를 보내기도(11월 28일자) 했다.

‘창’은 우리 사회의 온기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창에 나온 소년의 사연에 눈물이 난다” “딱한 사정의 중국동포를 돕고 싶다”는 독자들의 온정이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와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이 명제 군 가족에게 후원금과 명제 군 형이 탈 전동휠체어를 전달해왔고, 한국의학연구소는 어머니와 형에게 무료 건강검진을 해 주기도 했다.

전북 전주의 한 시민은 중국동포 형제에게 300만 원을 보냈고 제주도에 사는 김종오(80) 씨 등 10여 명이 ‘우산 소년’ 재혁 군을 돕겠다고 나섰다.

이런 따뜻한 손길에 힘을 얻은 ‘창’의 주인공들은 용기를 얻었다.

명제 군의 어머니인 최모(39) 씨는 “감사의 손길 덕분에 어느 때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번에는 받기만 했지만 언젠가는 이런 사랑을 베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하다 사채 빚더미에 올랐던 심모(20) 양(11월 10일자). 그는 “잠시 험한 인생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새해에는 재수학원에 등록해 예술대에 도전하고, 멋진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무기수 아버지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은 박모(28) 씨는 “아버지가 주신 생명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아버지가 사회에 진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임신혁 어린이재단 마케팅본부장은 “동아일보의 ‘창’은 세상과 소통하는 따뜻한 통로”라며 “창밖을 내다보듯 세상 밖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이웃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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