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불행稅와 부자黨

  • 입력 2008년 9월 26일 20시 10분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가 깔아놓은 트랩에 걸려 갈팡질팡하고 있다. 노 정부는 서울 강남 아파트에서 거둔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낙후한 지방에 교부금으로 나눠주는 장치를 해놓았다. 종부세를 없애면 지방이 반발하고, 서울 강남에 살지 않는 국민이 거부감을 갖도록 올가미를 쳐두었다.

섣불리 종부세에 손대다 ‘부자 대 서민’의 대결 구도가 생긴다면 한나라당에 타격이 클 것이다. 정부가 종부세 완화 대책을 내놓으면서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는 더 떨어지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종부세 완화를 잘못이라고 보는 부정적 평가가 65.7%였다. 이 같은 여론의 부담 때문에 한나라당에는 종부세 완화를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을 가진 의원들이 있다. 헌재가 법리에 따라 종부세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 그때 가서 헌재 결정에 따르는 법률을 만들어 여론의 역풍을 피하자는 전략이다.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지려면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지금의 헌재 구성으로 볼 때 과반수도 채우기 어렵다. 노 대통령이 임명한 9명의 재판관 중에는 한나라당 추천 몫과 검찰 출신, 그리고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재판관도 있지만 다수는 아니다. 헌재 사정에 밝은 한 변호사는 “헌재에서 종부세 위헌론은 소수의견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가구별 합산 조항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에서 합헌 결정이 내려지면 종부세에 손대기가 더 어려워진다.

로빈후드 정책 성공한 나라 없어

법인세 상속세 종부세처럼 기업과 부자들이 내는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은 원래 대중적 인기가 없다. 감세(減稅)가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경제논리로 국민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에 ‘부자만 세금을 깎아준다’는 프로파간다는 서민을 격동시킬 수 있다. 대중의 인기만을 염두에 둔다면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로빈후드 정책이 박수를 가장 많이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은 공산주의 출현 이래로 인류사에서 성공한 전례가 없다.

세금은 납세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차등(差等)을 두어야 실질적 평등에 부합한다. 부담능력에 맞추어 세금을 매기는 이른바 응능과세(應能課稅)의 원칙이다. 종부세 납세자의 35%가 연 소득 4000만 원 이하이고, 이들은 소득의 46%를 종부세로 내고 있다. 운 좋게 집값이 뛴 ‘버블세븐’ 지역에서 살게 됐지만 현직에서 은퇴했거나 실질소득이 낮은 사람들이다. 각종 세금을 내고 난 연 4000만 원 이하 소득에서 다시 절반가량을 종부세와 재산세로 가져가는 것은 응능과세의 원칙에 어긋난다.

종부세의 설계자들은 “세 부담이 견디기 어려우면 팔고 이사 가면 된다”고 편하게 말했다. 다른 내구재와 달리 집은 삶 그 자체다. 이웃, 자녀들의 학교, 종교 및 여가활동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공간이다. 높은 세금으로 ‘억지 이주’를 강요할 정도라면 행복추구권 침해다.

집값이 올랐으니 그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는 말도 ‘배 아픈’ 심리에는 부합할지 모르지만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있다. 집은 팔지 않으면 소득이 생기지 않는다. 이른바 미실현(未實現) 소득에 과세하는 나라는 선진국 가운데선 찾아볼 수 없다. 이중(二重)과세도 문제다. 해마다 누진되는 재산세를 매겨놓고 다시 종부세까지 무겁게 때리는 것은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과세다. 헌법재판소는 조세법률주의에 관해 ‘조세행정에서 법치주의의 적용은 조세 징수로부터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법적 생활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면서 ‘조세법의 목적이나 내용이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이념과 헌법상의 원칙에 합치돼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민주당이 종부세 폐지에 반대하는 것은 당의 색깔이나 정책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의 78.3%가 종부세 폐지에 반대했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찬반이 비슷한 숫자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 줄기차게 종부세 징수에 반대했고 폐지를 대선과 총선 공약으로 내걸어놓고 이제 와서 못하겠다면 지지자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다.

국민 설득해 종부세 완화해야

어느 나라에서나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중요한 준거가 조세 정책이다. 한나라당은 보수당인가, 진보당인가.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감세정책을 펼 때 인기가 높았던 것은 아니다. 반대하는 국민을 설득해가며 감세를 추진했다.

소수의 국민일지라도 부담능력에 비해 과다하거나, 순리에 맞지 않는 세금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면 완화해주는 것이 사회 정의에 부합한다. 다수자에게는 자유인 것이 소수자(少數者)에게는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 소수자의 권리 보호도 숭고한 헌법정신이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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