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책]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눈물

  • 입력 2008년 5월 31일 02시 52분


◇눈물상자/한강 지음·봄로야 그림/71쪽·7500원·문학동네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슬픈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이 기쁜 일과 감사할 일이 있었는지,

이렇게 깊이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른 봄날, 갓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걸 보고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거미줄에 날개가 감긴 잠자리 한 마리를 보고는 오후가 다 가도록 눈물을 흘렸고, 잠들 무렵 언덕 너머에서 흘러든 조용한 피리 소리를 듣고는 베개가 흠뻑 젖을 때까지 소리 없이 울었다.’

아름답고 슬픈 메타포로 가득한 동화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눈물을 흘리는 아이, 검은 상자에 눈물을 수집하러 다니는 아저씨, 그가 찾고 있는 ‘순수한 눈물’과 그들이 함께 만난 ‘한 번도 울지 못한 할아버지’, 그리고 눈물 흘리는 그림자까지.

소설가 한강(38) 씨가 쓴 이 동화는 신비로운 등장인물들이 상징하는 바에 대해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열어두고 있다.

삶과 생명체에 대한 예민하고 섬세한 촉수를 가진 꼬마 아가씨는 눈물 수집가 아저씨가 꼭 찾고 싶어 하는 ‘순수한 눈물’을 지니고 있다.

그는 분노, 기쁨, 슬픔, 절망의 눈물 등 가지각색의 보석 같은 눈물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순수한 눈물은 찾지 못했다. 아이는 아저씨를 따라 여행을 떠나면서 가족이 죽을 때조차 눈물을 흘리지 못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에겐 너무나도 간절히 ‘눈물’이 필요하다. 우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물을 산 후 펑펑 울고 난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슬픈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이 기쁜 일과 감사할 일이 있었는지, 고통스러운 시간과 평화로운 시간이 함께했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이렇게 깊이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이는 눈물 상자를 들고 다니는 아저씨 역시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사람이란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아저씨에 대한 연민 때문에 눈물이 나려 하지만 아이는 입을 꽉 다물어 울음을 참는다. 울보단지라고 놀림받던 아이가 ‘눈물을 참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다. ‘숨겨진 눈물은 그 가슴 가운데서 점점 진해지고 단단해진다’는 것, 진정으로 순수한 눈물은 ‘강인함, 분노와 부끄러움 더러움까지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함’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햇살처럼 투명한 눈물을 간직하고 있을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에게도, 우는 법을 잃어 버린 어른들에게도 우리가 흘리는 눈물의 종류만큼이나 풍부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책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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